[특별대담] “한국미술협회, 예술가 공동체인가 권력의 전장인가
“한국미술협회, 예술가 공동체인가 권력의 전장인가”
– 구조적 병폐와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서
진행: 류안 (사회자, 코리아아트뉴스 발행인)참석: 김일해 (서양화가), 정요섭 (미술평론가)
일시 : 2025년 7월 9일 장소 : 서울 인사동 아르떼숲 갤러리

허울뿐인 협회, 어디로 표류하는가
2025년,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이하 협회) 창립 60년을 넘긴 국내 최대의 미술단체이다. 전국의 지회·지부와 수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술대전과 국제 교류를 주관하는 조직으로 공표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협회가 그 기능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지에 대해선 의문과 회의가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협회 내부에서는 반복적인 이사장 선거 무효 사태가 발생했고, 회비 대납을 중심으로 한 금권 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미술대전 심사위원 선정의 폐쇄성, 운영 구조의 불투명성, 미술대전 상금·심사 논란, AI 아트와 같은 새로운 미술의 변화에 대한 무대응, 세대 단절과 청년 작가 유입 실패 등 협회는 조직으로서의 실질과 철학 모두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공식 단체로서의 공동체성과 윤리, 투명성과 시대 대응력은 무너지고, ‘이름만 남은 조직’이라는 말이 예술인들 사이에 공공연히 퍼져 있다.

왜 '코리아아트뉴스'는 지금, 이 대담을 기획했는가
'코리아아트뉴스'는 그동안 미술 현장에서 활동해온 작가, 평론가, 기획자들이 모여 만든 예술 플랫폼으로, 뉴스 전달을 넘어 예술 담론의 공론장을 추구한다. 이번 심층 좌담은 단순한 문제 제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협회의 진로를 다시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이 기획은 다음의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협회 구조의 병폐와 기능 상실의 실체를 ‘가려진 대화’가 아닌 ‘열린 논의’로 끌어올릴 것.
선거, 심사, 예산, 정관, 기술, 철학 등 핵심 사안을 구체적 사례와 발언으로 드러낼 것.
협회가 창작자 중심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방향성과 대안을 예술인의 입을 통해 제시할 것.
공동체 회복을 위한 구조 설계와 철학 선언의 필요성을 사회적 대화로 정리할 것.
그리하여 '코리아아트뉴스'는 이번 좌담을 단순한 기사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이는 예술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시작이자, 예술가 스스로의 조직을 다시 세우기 위한 설계도에 가까운 기획이다.

협회의 구조적 문제: “회비 대납이 이긴다”
류안: 오늘 대담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협회가 예술가 공동체로서 다시 기능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지를 짚어보는 자리입니다. 먼저, 협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일해: “대납을 많이 한 사람이 이긴다.” 이 말이 협회 선거의 현실입니다. 회비를 대신 내주고, 그 대가로 표를 사고, 자리를 사고—이게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사장직은 예술의 ㅣ리더쉽이 아니라 이권의 상징이 되어 버렸어요. 이것이 부끄럽지만 협회의 얼굴입니다.
구조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협회는 사단법인이지만, 의사결정 구조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이사장이 이사를 지명하고, 그 이사들이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은 폐쇄적이고 커넥션 중심입니다. 회원 수는 4만 5천 명이라지만, 회비 미납자와 사망자까지 포함된 이른바 ‘귀신 회원’이 많습니다. 숫자만 유지하려는 이유는 문체부나 외부 기관에 세력 과시용으로 쓰기 위함이죠.

류안: 저도 협회 정관을 검토해봤는데, 회원의 권리와 의무가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고, 이사장 권한은 지나치게 광범위합니다. 이건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예술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구조적 병폐입니다.
이사장 선거와 수사, 김일해 작가의 고백
류안: 김 작가님께서 과거 이사장 선거에 출마하셨을 때 수사까지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죠. 그 경험을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일해: 네, 그때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당시 상대 후보 캠프에서 대납이 있었다는 정황이 있었고, 제 캠프에서도 일부 참모들이 대납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경찰은 “상대 캠프에서 수 백 명이 대납했고, 당신 캠프에서도 수 십 명이 대납한 걸 알고 있다. 당신이 불면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류안: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김일해: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납을 하지 않았다. 그런 구조를 바꾸려고 출마한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계속 압박했어요. 결국 제가 쓴 진술서에는 “참모 회의에서 대납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말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 책임은 인정한다”는 문장이 들어갔습니다. 그게 신문에 그대로 나갔고, 우리 캠프도 대납했다는 식으로 보도됐죠. 제가 그때 그렇게 말한 것은 우리 미협이 법적인 분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충정 때문이었습니다.
정요섭: 그건 정말 협회 선거의 구조적 병폐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후보가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려 해도, 주변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 거죠.
김일해: 맞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도 소용없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선거가 다가오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류안: 그런데 최근에 이사장 선거에서 분란과 내홍을 미협 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적인 판단을 구하는 상태가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현재대로 법적인 판단을 기다린다면 이번 이사장 선거는 약 2년 후에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정요섭 :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되어 미술인으로서 자괴심이 듭니다
류안: 김일해 작가님께서는 그러한 경험이 오늘 대담에서 제안하신 공탁금 제도, 전자투표, 외부 감시기구 도입 같은 개혁안의 배경이 되었겠군요.
김일해: 그렇습니다. 저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협회가 바뀌지 않으면 작가들이 협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선거와 리더십: “축제가 아닌 거래의 장”
류안: 이사장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분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요섭: 선거는 학연·지연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특정 세력이 집행부를 독점합니다. 선거 후에도 패거리 간 갈등이 지속되며 협회 운영에 악영향을 줍니다. 선거가 끝나도 갈등은 끝나지 않아요.
김일해: 후보 등록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됩니다. 선관위 구성도 특정 세력 중심이고, 전자투표 도입은 회피됩니다. 오프라인 선거를 선호하는 이유는 회비 대납자들이 투표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 냈는데, 누가 투표에 참여했는지 확인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거죠.
정요섭: 현행제도에서 후보자마다 1억원으 돈을 내야합니다. 적지 않은 이 돈이 선거에 쓰여지고 나면 빈 손이 됩니다. 이번만 해도 후보자가 각 1억원씩 총 4억원을 냈는데, 이 돈으로 협회가 여는 아트페어 운영자금으로 쓰기를 제안합니다. 그 돈이 장소비는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회원들도 아트페어 전시장에 오게되고, 거기 한 곳에 투표소를 설치하면 투표 독려를 위해 큰 돈을 쓸 필요가 없잖아요

류안: 선거를 아트페어와 병행해 축제처럼 운영하자는 제안이 인상 깊었습니다. 선거일을 작가들의 시장 접근 기회로 삼는 방식은 매우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입니다. 선거가 예술가들의 축제가 되어야지, 거래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회원 간의 소통과 세대 간 단절: “65세 평균 연령의 협회”
류안: 젊은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김일해: 젊은 작가들이 협회에 매력을 갖게 해야 합니다. 뉴욕, 파리, 베이징 등에 200평 규모의 갤러리와 레지던스 숙식 공간을 마련해 국제 진출을 지원해야 합니다. 미술은행 예산을 활용해 작가 파견을 지원하는 방식도 제안해 볼 수 있겠습니다. 현지 문화원과 연계해 운영하면 큰 예산 없이도 가능합니다.
정요섭: 협회 주관 경매 제도를 도입하면 젊은 작가들이 시장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특정 화랑 중심의 폐쇄적 구조 때문에 협회가 실질적 시장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젊은 작가들은 협회를 창피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무관심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류안: 협회 평균 연령이 65세라는 건 충격적입니다. 젊은 작가들이 협회를 외면하는 이유는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협회가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매, 상금, 국제 진출, 시장 접근 등 실질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협회의 역할과 방향성: “예술가 공동체로 돌아가야”
류안: 협회가 본래의 설립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요섭: 아니요. 협회는 더 이상 창작과 교류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미술대전의 공정성, 심사 투명성, 국제 교류 기능 모두 위기 상태입니다. 협회는 예술가의 권익을 보호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권력과 이권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일해: 국제 네트워크 구축, 해외 문화원 연계, 글로벌 레지던스 운영 등이 전략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권력 중심적인 구조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류안: 협회는 예술가 공동체로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권력 중심이 아니라 창작 중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협회가 예술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창작과 교류를 촉진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미술대전의 심사 투명성과 상금 제도
류안: 협회의 대표 사업인 미술대전이 과연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 많습니다. 심사 기준은 불투명하고, 수상자 선정 과정은 외부에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김일해: 심사위원 자격도 모호하고, 어떤 특정 상의 사례비도 받는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대상 상금이 50년째 1,000만 원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 상금은 그대로예요. 대중가요 한 곡에도 1억이 넘는 상금이 주어지는데, 미술은 왜 이렇게 저평가되는지 모르겠어요. 젊은 작가들이 전세 보증금이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상금을 5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올려야 합니다.
류안: 심사 과정 생중계 제안도 나왔죠?
김일해: 네. 유튜브나 방송 플랫폼을 통해 심사 과정을 생중계 하면 투명성이 확보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이 마이크 앞에서 작품을 설명해야 한다면, 커넥션으로 수상시키는 일이 줄어들 겁니다. “낚시도 중계하는 시대에 왜 미술 심사는 숨기냐”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NFT·AI 시대의 윤리적 대응
류안: NFT와 AI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협회는 어떤 입장을 내놓고 있나요?
정요섭: 아무런 입장이 없습니다. NFT 열풍이 불었을 때도, AI 작품이 크리스티 옥션에서 고가에 팔릴 때도, 협회는 침묵했어요. 예술 윤리와 저작권 문제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말이죠. AI는 수십만 장의 타인의 작품으로 학습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이건 저작권 침해이자 예술 윤리의 충돌입니다. 협회는 이런 기술 변화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고, 작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조영남 화가의 대작 사건 때도 협회는 유감 표명만 했지, 화단의 내부에서 대리작 제도에 대해 고백하거나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그때가 자정의 기회였는데 놓쳤죠. 협회는 문화예술계의 이슈에 대해 자기 입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류안: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기술이 예술을 위협할 때, 협회는 침묵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NFT든 AI든, 예술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윤리를 지키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국제 전략과 글로벌 경쟁력
류안: 협회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까요?
정요섭: 한국 미술시장, 특히 인사동 갤러리의 전시에 대해 국제 갤러리스트들이 외면합니다. 반면 중국의 798 예술구는 주말마다 인사동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활기차요. 미술협회가 화랑협회와 연계해서 국제적 거점을 마련하고, 작가를 발굴·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대중예술과 순수미술이 따로 놀지 말고, K-POP 공연에 맞춰 순수미술 전시를 부대 행사로 연계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류안: 예술은 국경을 넘는 언어입니다. 협회가 세계와 연결되려면, 단순한 전시 지원을 넘어서 전략적 거점을 구축하고, 작가를 국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협회 정관 개정과 철학적 전환
류안: 협회 정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김일해: 이사장 권한 제한, 회원 참정권 보장, 지회장 당연직 이사회 참가, 서예 분과 분리 등 다뤄야 할 항목이 많습니다. 지금 정관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외부 감사와 독립 감시기구 도입도 필수입니다. 협회는 자정 능력을 잃었고, 자발적 개혁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외부 전문가 중심의 비대위가 필요합니다.
류안: 협회가 예술가 공동체로서 다시 기능하기 위해 어떤 철학적 전환이 필요할까요?
정요섭: 예술가들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허브가 되어야 합니다. 미술시장, 미술의 트렌트, 예술가의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분야에 의견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그만큼의 철학체계가 굳건해야 가능합니다. 문제는 추상,구상, 한국화, 서양화로 나누는 인식이 문제입니다, 그런 후진적인 사고로는 미술협회의 환부가 무엇인지, 환부를 어떻게 도려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김일해: 협회가 젊은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면, 그들은 협회를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매, 상금, 국제 진출, 시장 접근 등 실질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류안: 협회는 예술가들의 '집'입니다. 그 집이 무너지고 있다면, 다시 짓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오늘 이 대담이 그 집을 짓는 첫 삽이 되기를 바랍니다.
호당 가격 증명서 발급, 예술가의 가격을 누가 정하는가
류안: 대담 중간에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호가 증명서’였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라, 작가의 시장 가치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입니다.
김일해: 과거에는 미협에서 호당 가격 증명서를 발급해줬습니다. 최근에 일어나 K-갤러리 사태 등으로 호당 가격증명서를 발급을 중단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공식적으로 호당 가격 증명서 발급이 중단되었다는 발표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예를 들어 “이 작가의 호당 가격은 100만 원이다”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게 악용되기 시작했어요. 5천 원만 내면 발급해주고, 그걸 작품 뒤에 붙여서 판매하는 겁니다. 심지어 판매 브로커들이 “이 작가가 호당 100만 원인데 30만 원에 드릴게요”라고 말하죠. 일반 소비자는 그걸 믿고 사요. 이건 시장 왜곡입니다. 이것을 협회가 모를리가 없는데 그냥하고 있는 이유는 회원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악순환의 연속이죠
정요섭: 더 심각한 건, 그 증명서가 실제로 작가의 실력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발급된다는 점입니다. 이건 협회가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겁니다.
김일해: 호가 증명서 제도는 폐지하는 게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마련해서 재정비해야 합니다. 작가의 경력, 수상 이력, 전시 활동 등을 기반으로 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협회가 책임지고 관리해야죠.
공모전 진행
류안: 최근에는 법원이 지정한 임시 이사장 집행부가 공모전을 강행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7대한민국 미술대전 등 해오던 공모전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김일해: 그렇게 추진하면 안 됩니다. 협회가 내부 안정도 없는 상태에서 공모전을 열겠다는 건 출품료 수익을 노리는 것일 뿐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요섭: 공모 사업은 조직 신뢰와 책임 하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사의 공정성 등 논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국제 전략의 공백: 미협은 세계와 연결되는가?
류안: 한국 미술은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협회는 국내 중심에 갇혀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김일해: 사실상 국제 전략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현지 문화원과 연계해서 뉴욕, 파리, 베이징 등 세계 거점도시에 갤러리와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 작가들에게 국제 진출의 기회를 줄 수 있죠. 그리고 대중문화와 함께 움직이는 전략도 필요해요. K-POP 공연에 맞춰 순수미술 전시를 부대행사로 열면 관심을 끌 수 있어요.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공공기관과 협회 간 단절 – “정부와 지방에서 협회를 무시한다”
류안: 이건 조금 예민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립미술관장, 지방 도립미술관장 같은 공공기관 인사가 이루어질 때 협회와 협의가 되지 않는 현실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보시나요?
김일해: 협회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죠. 그런 구조를 바꾸려면 운영의 투명성, 기획력, 정책 대응력이 필요합니다. 예산 확보나 기관 연계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지금은 그 모든 기초가 없는 상태입니다.
류안: 정부 문화예술비는 연간 수천억 규모입니다. 그런데 미술 분야, 특히 협회가 받아내는 예산은 거의 없습니다. 이는 협회의 행정력과 기획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기획자를 키우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협과 화랑협회와의 소통 단절 – “우리가 아트페어에 의견을 낼 권리조차 없다”
류안: 이번에는 협회와 외부 유관기관, 특히 화랑협회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미술계의 시장 흐름을 결정하는 축 중 하나가 ‘아트페어’인데, 미협이 그것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나요?
김일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거의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화랑협회가 주도하는 아트페어들이 진행될 때, 미협은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지니지 않고 있습니다. 출품작가가 미협 회원인 경우도 드물고 회원이라해도 미협이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국내 최대 미술 단체로서 소속 작가만 수만 명인데도, 시장과의 연결권한이 없어요. 그 수만의 회원들이 미술시장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류안: 결국 미협이 시장 중심 네트워크와 단절되었다는 건, 미술 생태계에서 고립되어간다는 또 하나의 증거겠네요.
협회는 작동하지 않지만, 개인은 이득을 얻는 구조 – “집은 무너졌는데, 지붕은 따로 이권을 챙긴다”

류안: 제가 오늘 대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협회는 여러 문제로 내부적으로 잘 운영되지 않고 있고, 공동체로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내부의 임원이나 지부장, 지회장, 심사위원은 협회 이름을 걸고 외부 미술 프로젝트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각종 이권에 관여하고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요?
정요섭: 웃픈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관청에서 미술 조형물 사업, 벽화사업, 공공예술 사업에 관여하려면 “미협 ○○지부장”이나 “미협 운영위원”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유력한 포지션이 되는 것이죠.
김일해: 게다가 그 구조는 폐쇄적이에요. 협회가 내부에서 민주적 절차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이사장이 지명하거나 기존 임원이 추천합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권한을 독점한 사람들이 이득을 나누는 구조가 됩니다. 작가들이 그런 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도 “우린 공적심사다, 기준대로 했다”는 식으로 넘어갑니다.
류안: 정작 협회는 작가들에게 실질적 혜택이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청년 작가들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임원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외부 사업에서는 계속 기획·심사·수당 구조에 참여한다면, 협회는 공공성과 공동체성은 없고 권력 중심 수익 구조만 남게 됩니다.
정요섭: 이건 철저한 제도 개편과 윤리 기준 정립이 필요합니다. 임원이 되는 사람은 내부에서 어떤 절차로 선출되었는지, 외부 심사에는 어떤 윤리 규범을 적용받는지, 이해 충돌은 없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협회 명의로 움직이는 순간, 협회는 개인의 방패막이거나 수익 플랫폼이 되어선 안 됩니다.
김일해: 그리고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정관을 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협회 차원의 윤리 운영 기준을 따로 만들어야 합니다. 임원 행동강령, 심사위원 회피 규정, 추천 투명성 등을 명문화해야 해요. 그게 없으면 협회는 “이권의 하청기관”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류안: 결국 “집은 무너졌는데 지붕만 따로 돌아간다”는 거죠. 공동체는 없는데, 권한은 유효하고, 이득은 계속 생긴다는 아이러니. 이 지점을 끊어야 협회는 예술가 플랫폼으로서 다시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미협이 공동체로 돌아가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류안: 오늘 세 시간에 걸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구조 문제, 윤리, 시장 접근, 국제 전략, 철학… 돌아보면 우리가 짚은 모든 주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향합니다. “한국미술협회는 누구를 위한 조직이어야 하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협회가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핵심은 무엇일까요?
김일해: 한 가지만 제대로 해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매 시스템 하나만 만들어도 작가들이 다시 협회를 주목할 겁니다. “내 작품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평가받고 시장에 나갈 수 있다”—그 믿음을 제공하는 구조가 생기면, 자연히 참여와 연결이 이뤄집니다.
협회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건 어렵지만, 제도 하나, 공간 하나, 혜택 하나부터 만들면 변화를 시작할 수 있어요. 그걸 주도할 수 있는 내부 사람과 외부 전문가가 함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요섭: 관행, 관습을 버리고 다 바꿔야 합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문제는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사장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악순환입니다. 이대로하면 미협이 굳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따라서 후보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검증을 위한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안: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 하나하나가 협회 내부에서 ‘이것만 해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좋은 제도는 사람을 바꾼다. 좋은 구조는 문화를 바꾼다.” 협회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술가에게 기회와 보호를 주고, 시대에 책임을 지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세우는 일. 그게 우리가 오늘 좌담을 기획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무리 제안 요약
방향성 | 제안 내용 |
철학 정립 | “창작자 중심 공동체로 선언하고 운영해야 한다” |
실질 제도 | 경매 시스템, 청년 작가 지원 사업, 국제 전시 구조 도입 |
정관 개정 | 이사장 권한 제한, 지부장 의결권 확대, 윤리 규정 신설 |
시장 접근 | 화랑협회와 협력, 미협 주도 아트페어·공정 판매 구조 마련 |
공동체 복원 | 지역·분과 단체와 연계 가능한 허브로 협회 재설계 |
시대 대응 | AI·NFT 윤리 기준 발표, 기술 가이드라인 제정 |
감시 시스템 | 외부 감사 기구 및 비상대책위원회 상설화 |
마무리
류안: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협회는 그 거울을 닦는 조직이어야 하고, 거기 비친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연결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다시 예술가의 집을 지을 설계도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코리아아트뉴스는 이 담론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편집자 주]
이 기획은 누구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홍과 갈등이 왜 계속되고 있는가를 구조적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입니다. 〈한국미협은 어디로 가는가〉 시리즈는 예술가의 공동체가 다시 ‘창작과 자유’의 이름으로 설계될 수 있기를 바라는 정직한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코리아아트뉴스는 한국미협의 문제점과 향후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제 25대 이사장 선거에 후보로 나온 4명의 후보자에게 개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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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아트뉴스 기획 시리즈 ①
| “이사장을 둘러싼 전쟁” 미술 공동체는 왜 권력의 전장이 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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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협, 또 다시 내홍”… 선거캠프 연합, 서예·문인화 공모대전 전면 중단 요구– 제25대 이사장 선거 후보 3인, “불법 공고…즉각 철회 안 하면 법적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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