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아트뉴스 기획 시리즈 ① | “이사장을 둘러싼 전쟁” 미술 공동체는 왜 권력의 전장이 되었는가 ?
코리아아트뉴스 기획 시리즈 ① | “이사장을 둘러싼 전쟁” 미술 공동체는 왜 권력의 전장이 되었는가
[코리아아트뉴스 특별취재팀] 한국미술협회(이하 한국미협)의 제25대 이사장 선거는 단순한 절차적 파행이 아니라, 수십 년간 누적된 구조적 병폐가 폭발한 사건이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선거 무효 소송과 재선거 중단 사태는 협회가 더 이상 예술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지는 기획 시리즈 〈한국미협은 어디로 가는가〉의 첫 번째 편에서, 이사장직에 집중된 권한, 선거 절차의 불공정성, 회비 동원 관행, 작가 이탈, 공모전 중단 요구, 예총과의 연결 고리, 그리고 이사장 선거의 역사까지—이 사태의 뿌리를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이사장 선거의 역사: 추대에서 정치로, 그리고 과열로
한국미협의 이사장직은 원래 덕망 있는 원로 작가를 추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김환기, 도상봉 등은 예술적 권위와 인격적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대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선거제도가 도입되면서 정치화가 시작되었고, 2001년부터는 회원 직선제로 전환되며 전국 단위 선거가 본격화되었다.
2003년 제20대 선거: 인사동 골목에 총선 포스터처럼 이사장 후보 포스터가 나붙었고, 선거 캠프 운영과 조직 동원이 본격화되었다.
2007년 선거: 후보 진영 간 고소·고발이 오갔으며, 이사장 선거가 과열되는 이유는 미협 이사장이 지닌 막강한 권한과 그에 따른 이해충돌”이라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차대영, 조강훈, 이범헌 등 이사장직을 거쳐 예총 회장직에 도전하거나 당선된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사장직은 예술계 권력의 관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사장직의 권한 집중: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
한국미협 이사장은 단순한 대표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권, 심사위원 선정권, 정부 및 지자체 지원금 배분권, 예산 집행권, 인사권 등 협회의 핵심 기능을 사실상 독점한다. 공식적으로 중앙회 예산은 연간 10억 원 내외에 불과하지만, 지부와 지회가 집행하는 예산은 별도로 존재하며, 이사장은 그 흐름을 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술계에서는 “겉으로는 권한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사위원 선정, 우수작 결정, 지부장 인준 등에서 보이지 않는 커넥션과 영향력이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사장은 각종 공모전과 행사에서 지부 임원들과의 인맥을 통해 이권에 개입하며, 그 영향력은 공식 문서보다 비공식적 채널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거 파행과 법적 무효: 대법원까지 간 혼란
2021년 1월 16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모바일 투표 방식으로 제25대 이사장 선거가 진행되었고, 이광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낙선 후보는 모바일 부정선거와 총회 정족수 부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3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2024년 12월 대법원은 선거 무효 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협회는 2025년 6월 28일 재선거를 계획했으나, 황제성 예비후보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선거는 또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 법원은 “피선거권이 위법하게 제한된 상태에서 선거가 실시된다면, 공정성과 정당성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될 것”이라며 선거 중단을 명령했다.
회비 동원과 선거권 왜곡: 금권 선거의 그림자
일부 지부에서는 회원 회비를 대납해 선거권을 확보하고, 특정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지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이는 협회의 회원 구조를 왜곡시키고, 민주적 절차를 금전적 동원력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는다.
선거가 공정한 경쟁이 아닌 조직력과 자금력의 대결로 치닫는 현실은 협회의 정당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실제로 전국 지회·지부장들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교통비, 숙박비, 식사비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며, 일부 후보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선거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증언도 있다.
작가 이탈과 공동체 붕괴: 예술가들은 왜 떠나는가
협회는 더 이상 창작과 교류의 공동체가 아니다. 젊은 작가들의 유입은 급감하고, 중견 작가들도 협회를 떠나며 세대 단절이 심화되고 있다. 공모전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 특정 계파 중심의 운영, 행정 마비는 예술가들의 신뢰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했습니다. 전세버스로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회식과 접대가 오갔죠.”
“협회가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젊은 작가들은 다른 경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증언은 협회가 예술 생태계의 중심축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모전 중단 요구: 오늘의 목소리
7월 4일, 일부 이사장 후보들은 협회에 공식적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공모전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선거가 무효로 확정된 상황에서 직무대행 체제가 공모전을 강행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공모전은 협회의 권한이 아니라 예술가 공동체의 신뢰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요구는 단순한 행정적 반발이 아니라, 공모전이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현실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다.
다음 편 안내 | 기획 시리즈 ② : “지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미협의 권력 구조를 지방 조직으로 확대시킨 지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제2편에서는 중앙-지부 간의 회계 단절, 지부 운영의 불투명성, 지부장 인준권의 권력화, 그리고 말단 조직의 구조적 병목을 분석합니다. 예술가 공동체가 기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조직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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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기획은 누구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내홍과 갈등이 왜 계속되고 있는가를 구조적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입니다. 〈한국미협은 어디로 가는가〉 시리즈는 예술가의 공동체가 다시 ‘창작과 자유’의 이름으로 설계될 수 있기를 바라는 정직한 물음에서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