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김영희의 수필 향기] 자작나무 숲에서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루가 떠났다. 14년을 함께 했는데, 새벽부터 밤중까지 내 발꿈치를 졸졸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들어주던 루. 마음이 공허하여 속이 텅 빈 강정처럼 겉 껍질만 남은 것 같다. 집에 있으면 계속 생각나서 허공에 떠있는 나. 어디든 나서야 했다. 겨울이니 무수히 흩날리는 눈을 마주하고 싶었다. 자작나무 숲이 생각났다. 바로 떠났다. 

  

  새벽 안개를 가르며 자동차는 빠르게 도시를 떠난다. 안개 속 강물에 잠긴 한강 다리만이 뿌옇게 모습을 보일 뿐, 강 건너편은 신비의 숲 속인 듯 짙은 안개에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가득 뒤덮은 고요 속 서울이 미지의 세계로 다가오는 이른 새벽. 이런 광경은 이 새벽이 아니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신비스러운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차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모습이, 나를 더욱 아련했던 옛 시절로 데려간다. 

  

  삶에 지치고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허공 속에서 그 시간이 쳇바퀴 돌듯 헤맴을 느낄 때, 응어리진 마음은 불쑥 어디론 가 떠나고 싶어진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자작나무가 살고 있는 곳으로 깊숙이 찾아가고 싶었다. 나의 지친 영혼도 숨 쉴 수 있는 그곳으로. 

  

  도시에서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는 왠지 쓸쓸해 보였다. 이곳이 이방인으로서 그의 모습이어서 일까.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에 자리를 잡고, 시끄러운 도시의 회색 벽 옆에 서있는 그 모습이 낯설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것은 어쩌면 방송에서 본 '자작나무의 환경 적응'에 관한 기사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은 기다림과 설렘을 준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라는 꽃말을 가진 자작나무는 그래서 더 그곳을 찾아가는 두근거림이 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을 기다려 왔다. 하얀 자작나무 기둥이 눈부시게 빛나서 희망과 빛을 상징하며 숲 속의 여왕으로 불리고,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보았던 그 설원의 자작나무 숲이 떠오르곤 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눈 내리는 벌판과 경쾌하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주제곡 '라라의 테마'와 주인공 유리 지바고 (오마 샤리프)와 라라(줄리 크리스트)와 토냐(제랄딘 채플린)의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게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깊은 산속 눈에 덮인 추운 적막 속 별장에서, 창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마주하고 장갑을 낀 채 시를 짓던 지바고. "사람들을 위해서는 의사가 되고 싶지만, 나를 위해서는 시를 쓰고 싶어." 

  광활한 설원을 배경으로 하는, 푸른 눈에 금발이 빛나던 라라와 크고 깊은 눈의 지바고의 운명적 사랑은 전쟁 속에서도 피어났다. 강원도 태백시 자작나무 숲을 찾아갔다. 주변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영화 속 그 장면들이 연상 되는 곳. 

 

  자작나무 껍질이 탈 때 '자작 자작' 하는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나무. 창백한 화선지에 먹물을 군데군데 꾹꾹 찍어 놓은 듯 자작나무 기둥이 백호 무늬처럼 신비롭고 강한 인상을 준다. 자작나무 앞에 서면 마치 그 오랜 세월, 몇 천 년 동안 내려온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에 젖는다. 천 년이 지나도 하얀 껍질이 썩지 않는다는 자작나무. 그런 연유에서일까. '당신을 기다립니다' 라는 자작나무의 꽃말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자작나무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천 년은 변치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한겨울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태초의 모습처럼 신비로워,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듯 흥분을 자아냈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로 일정을 잡은 것이 기적과 같았다. 마치 신이 점지해 주신 날인 듯 폭설이 내렸으나 갑자기 찬 공기가 물러나고 단 하루 온화해지는 날씨였으니, 그 단 하루가 양쪽에 끼인 절묘한 순간이랄까. 운명 같은 날이었다. 

자작나무 숲에서 [ 이미지 :류우강 기자]

  고속도로를 지나고 긴 터널을 여러 개 지나 도착한 주차장 입구, 눈이 이십 센티미터 정도 쌓인 가파른 산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다. 높이 솟은 자작나무 가지 위에 앉은 흰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윤슬처럼 반짝이고, 자작나무는 하얀 대지 속 흰 옷을 입은 천상의 세계에 사는 신선처럼 보였다. 여러 나라들이 자작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삼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하늘과 맞닿은 하늘 공원에서 그를 만나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고, 힘겹게 내딛던 다리의 묵직한 피로도 어느새 사라졌다. 잎은 지고 가녀린 자작나무 가지 끝에 반짝이는 눈 꽃이 피었다. 환상적인 광경이 영화처럼 사방에 펼쳐졌다. 

 

  자작나무가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나의 삶에도 빛나는 보석 같은 순간이 찾아 온 것만 같은 그곳, 자작나무 숲에서 나의 영혼도 숨을 돌린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시간이고 내일은 오늘의 꿈을 이루는 시간이다. 너와 내가 함께 걸어갈 시간들. 자작나무 숲처럼 우리 서로 손잡고 숲으로 가자. 꿈을 꾸고 꿈을 심어 함께 꿈을 이루자. 

 

  새벽에 떠나는 여행의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서는 발걸음에 설렘을 담고, 새벽 안개 가르며 텅 빈 도시를 질풍처럼 달리는 차창 너머로, 희뿌연 도시의 낯선 풍경이 시끄러운 도시를 잠재우는 시간에, 나는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하여, 자작나무 숲을 향하여. 

 

- 김영희의 '자작나무 숲에서'

인생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 이미지 :류우강 기자]

[수필 읽기]

 

  누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 놓고 어디론 가 떠나는 것을 늘 꿈꾼다. 그만큼 잠시라도 현실의 벽에서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갈 수 있다. 여유는 마음의 여유나 현실의 여유가 될 수 있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상황이 안 돼서 쉽게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라는 표어를 보았다. 나이에 크게 관계없이 어떤 이유에서 든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가 인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움직여야 하니까 어디든 자유롭게 가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쉽지 않으니, 자연히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건강할 때 다니라'는 말이 힘을 받는다. 

 

  요즘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그만큼 과거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부족한 게 많았던 시절에 살았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젊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다니는 것 같다. 부모님 세대의 경우는 자식들 교육 시키느라 허리띠 졸라 매고, 일에 매어 사느라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자식도 많이 낳지 않고 T.V에서 여행상품광고도 많이 하니 당연히 더 가고 싶고, 더 가게 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생각이 나와 많이 다를 것이다. 중년 세대가 아끼고 살았다면 그들은 우리 때보다 더 쓰고 더 즐기고 사는 것 같다. 물론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서 가정 경제에 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집에 대한 관념도 우리 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집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힘들었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겠다.  

  

  누구나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살아가며 즐겁게 살면 될 일이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가능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가까운 곳에라도 가서 마음을 풀어보고 즐거운 음악도 듣고, 좋은 영화도 한 편 보며 내일을 잘 살기 위한 충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하되 걱정이나 불안에 오래 빠져 살지 말자.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 그 시간을 아껴서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시간을 버는 일이겠다. 

  우리 인생은 소중하고 나도 소중한 존재이니 하루 중 잠시라도 행복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 보자. 

  

  시간은 금이요, 돈이라고 하지 않던가.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수필가 김영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영희수필향기#자작나무숲에서#인생은걸을수있을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