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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64] 이승하의 "아픔의 나라에서"

이승하 시인
입력

아픔의 나라에서

 

이승하

 

밤마다 울고 있는 화양동의 한 아이가

밤하늘의 한 별을 깨워 눈뜨게 한다

한 마리 개의 울음이 온 동네 개들 다 짖게 하듯이

한 별의 울음이 이웃 별 차례로 깨워

천지가 다 별이다

별처럼 많은 죄와 벌이다

 

너희들은 아파서 그렇게 반짝이고 있지? 그렇지?

별들은 작은 점 같지만

얼마나 아프면 몸이 불탄단 말인가

몸이 불타는데 어찌 밤하늘에서 떨고 있는지

천지가 다 속 깊은 울음이다

 

서울의 저쪽 광진구 화양동 다세대주택

반지하 쪽방에서 너는 도대체 몇 년을 산 거니?

2? 3? 네 나이 세 살이라고 한다

온 동네 떠나갈 듯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구나 1365일 내내

울고 있었구나 웃어본 적은 있니?

 

아버지에게 맞아 숨진 어린아이야

네가 죽어갈 때 나는 회 안주를 먹고 있었을까

한 달 동안 집에 처박혀 있던 너의 시체를 생각한다

한 달 뒤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야

언제나 몸에 멍이 들어 있던 너를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다면

아프지 않은 세상이 있는지도 몰랐겠구나

천국에 가도 너는 겁에 질려 아빠만 부르겠구나

때리지 말아 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용서를 구하는 말도 배우지 못한 채 너는

 

―『예수ㆍ폭력』(문학들, 2020)

 

11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 [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1119일은 아동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이날과 관련된 시를 찾다가 찾지를 못해 오늘 또 졸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세계여성 정상 기금(Women’s World Summit Foundation)에서 지정한 날로 한국은 2007년부터 매년 기념식을 거행해 왔습니다. 특히 201184아동복지법의 개정으로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취지에 맞는 행사와 홍보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로부터 1주일을 아동학대 예방주간으로 지정하여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도록 했으며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교육과 홍보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제가 이 시를 쓰게 된 것은 2011214일자 <동아일보>에 난 아래 기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가 만삭이 되어 돌아오자 김모 씨(33)내 자식인지 알 수 없다며 구박했다. 폭행은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됐다. 아이가 밤마다 울자 이웃 주민이 항의했고 이 가족은 두 차례 이사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서울 광진구 화양동 반지하 쪽방에서 아이는 숨졌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머리를 싱크대에 부딪힌 뒤였다. 김 씨는 아이의 시신을 한 달 가까이 집안에 방치하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이웃 주민들은 김 군의 몸은 늘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어머니는 대낮에도 술을 마셨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김 군은 매일 맞으면서 울었지만 아동보호기관에는 1건의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늘 아래 어찌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화양동의 김모 씨 아이는 태어나고서부터 계속해서 굶주림과 공포와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1년에 평균 45명의 아이가 어른에 의한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사례만을 바탕으로 한 수치로,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네 배 가량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국에 얼마나 많은 교회와 성당과 절이 있습니까. 그렇게 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런 아이들이 한 명도 없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아래는 올해 78<한국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지금도 어딘가, 학대받는 아이

  아동학대 가해자 86%가 부모

  가정 밖 감시자들 제 역할 못해

  아동 사망 검토제도 도입해야

 

  국내에서 학대로 숨진 아동은 202043, 202140, 202250, 202344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망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202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2017년 아동 변사사건 1,000여 건의 부검 결과를 분석했더니 최대 391명에게서 학대 정황이 나왔다. 같은 3년 기간 정부가 확인한 아동학대 사망자 수(90)4배가 넘는다.

 

  시인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를」「이 아이의 눈동자 앞에서」「생명에 대한 예의」「목숨의 값어치」「병든 아이」「이 사진 앞에서」 같은 시를 썼습니다

  아동학대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입양한 아이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가 여러 건 있었고 의붓어머니에 의한 학대 건도 꽤 많았습니다. 친아버지가 자식을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우리 사회 가치의 척도가 행복, 사랑, 평화, 복지 같은 보편타당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불교가 자비심과 보시를 주창하고 기독교가 연민의 정과 사랑을 설파하는데 세상은 더욱더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즐겨 하는 컴퓨터게임에 남을 도와주면 내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다수 게임이 살인하고 파괴합니다. 때리고 총을 쏘아 죽이고 땅을 빼앗습니다. 레벨을 높이려면 더욱더 폭력적이어야 합니다. 폭력이 일상다반사가 된 사회, 행복의 척도가 오직 돈만이 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살게 하지 맙시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붓다와 예수가 한 종교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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