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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블랙코미디 / 전해미 수필집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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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미 "블랙코미디, 192쪽 138*201mm, 청어, 2025.10  

■ 책 소개

 

응급실에서 남편과 나란히 누워 있다가 결국 따로 귀가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하루, 한바탕 돌풍 속에서 아이를 붙잡아준 순간, 비에 흠뻑 젖은 채 물웅덩이를 밟으며 되찾은 작은 해방감, 그리고 할머니도 자전거를 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건네는 뭉클함까지. 이 산문집은 일상의 크고 작은 장면들을 유머와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특히 병원 갈 때는 같이 갔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따로따로 오는 상황이 블랙코미디 같았다는 짧은 독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지나치게 극적이지 않은 삶의 표면을 차분히 들여다보되, 그 속에서 느리게 피어오르는 감정의 농도와 사람 사이의 미묘한 온기를 집요하게 포착한다. 익숙한 일상의 틈에서 뜻밖의 우스움과 따뜻함이 번지는 순간들—그 평범함이 이 책의 가장 큰 힘이다. 삶을 버티게 하는 사소한 웃음, 소소한 위로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산문집이다.

 

■ 작가의 말

 

아파트 화단에 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피었습니다. 억새꽃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이 더욱 도드라져 눈이 부시도록 황홀했습니다. 어쩜 저리도 맑고 아름다운지. 군락마다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었지요. 가을은 깊어지고 있는데 내 마음은 초조해졌습니다. 수필을 엮어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 시간이 나를 옥죄어 오고 있었거든요. 아직 영글지 못한 글을 내놓기가 민망하여 출판을 포기하고도 싶었으나, 더는 미룰 수 없어 결심을 굳혔습니다.

 

살아오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도 있고 가슴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그 또한 내 삶을 지탱하게 한 자양분이자 요소들이기에 기억을 소환하여 글로 엮어서 수필집을 출간합니다. 가는 세월에 희미해지고 사라져가는 기억의 파편을 찾아 글을 쓰다보니 보이지 않게 드러나는 나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오래 묵은 장맛은 깊은 풍미가 있어 감칠맛이 난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씨간장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마음처럼 완벽하지 않아 감칠맛을 내는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수필에 당선이 되고 9년이라는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치열했다고 할 수 없어도 고심은 많이 했습니다. 잘 써지지 않는 글을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그때마다 곁에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두 분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수필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수필가이자 소설가이신 최숙미 선생님과 시인이자 소설가이신 박희주 선생님이십니다. 내 인생에서 이 두 분을 만나 삶의 궤도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주저 없이 손을 내밀어 주고, 제가 질환으로 쓰러졌을 때 본인의 아픔처럼 함께 아파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함을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구순 어머니께서는 셋째딸 해미가 책을 낸다고 하니 함박같이 웃으시며 장하다고 대견해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셔서 제 책이 닳도록 읽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늘 응원해 주는 가족들과 형제간들, 해미 바라기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문학회 활동을 함께하는 문우님들께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내 삶의 과정들을 엮은 수필집이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된다면 이 책을 엮는 가장 큰 보람이 되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도록 채찍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본문 중에서

 

간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갔다. 남편은 본인 것만 결제하고 혼자서 퇴원했고, 나는 수액을 다 맞고 내 카드로 결제하고 귀가했다. 병원 갈 때는 같이 갔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따로따로 오는 상황이 블랙코미디 같았다. 우리 부부는 여태 살아오는 동안에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자주 있어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 굳이 남편의 성격도 고쳐주길 바라지 않고 인정해 주고 만다. 비껴가는 삶을 사는 게 더 편안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면 이해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익숙해서 불편하지 않다는 게 더 아이러니하지만, 세월이 가니 포기해지는 것도 있고 이해되는 것도 있어 우리 방식으로 맞춰가며 살고 있다.

 

─본문 18쪽 「블랙코미디」에서

 

나무 한 그루가 주는 산소는 성인 오십여 명이 숨 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무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내가 사는 곳은 숲까지는 아니래도 녹지 공간이 많다. 식재된 나무들과 건물 옆으로 흐르는 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로 이어진 샛강에선 왜가리와 청둥오리 한 쌍을 만날 때도 있다. 작은 강에 먹이가 풍부해 떠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다. 무리에서 어떻게 벗어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소통할 수 없으니,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외로운 왜가리와 청둥오리의 부부애, 물고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참새와 박새 그리고 직박구리의 요란한 사랑놀이도 엿볼 수 있다. 나무가 있어 새들도 찾아드니 나무의 혜택이리라.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 새소리는 유난히 청아하게 들린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본문 92쪽 「홀로서는 나무」에서

 

해설_박희주(시인·소설가)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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