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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4] 강영은의 "생일"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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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강영은

 

해마다 온다.

매화나무 가지가 꽃을 피워내듯

일생 동안 온다.

 

매화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처럼

잃어버린 신발을 찾는 동안 열리기만 하는

, 그 틈새로 헐벗어도 눈부신

아기로 온다.

 

언젠가 나는

태어나지 않은 별에게 노래를 들려준 적 있다.

오늘 뭐 하지, 묻기도 전에

한 점이 되어 날아간 초저녁별을

노래한 적 있다.

 

사라지는 별빛이 환이고

갑이었는지 모른다.

 

태어난 것을 모르는 노래가 태어나기 위해 돌아온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작은 얼굴들을 여러 개 만들어 순서대로 놀면서,

오래 사랑했던 사람들과 방금 인사를 나눈 벌레들과

헤어지는 순간을 연습할 때

 

일생 동안 피는 꽃으로 온다.

한 잎, 한 잎, 꽃잎 떨구며 먼 우주에서 온다.

스스럼없이 온다.

 

―『너머의 새』(한국문연, 2024)

 

생일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생일이면 더욱 외로운 그대

 

  한 사람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생일(生日, birthday)’이란 것이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고대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케이크ㆍ촛불ㆍ선물ㆍ노래 같은 생일 문화는 1819세기에 유럽에서 형성되어 전 세계에 퍼진 것이라고 한다. 오늘이 생일인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고 언급조차 안 한다면 무척 섭섭할 것이다.

 

  강영은 시인은 생일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보았다. 일단 해마다 오는 것이며 일생 동안 오는 것으로 보았다. 맞는 말이다. 2연은 강 시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절묘한 표현이다. 탄생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고(呱呱)의 울음을 터뜨린 바로 그날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산도를 통해 나와서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게 된 첫날! 지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그날이 돌아왔음을 타인이 축하해주지 스스로 축하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예로부터 탄생일을 별자리와 연관 지어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321일부터 419일까지는 양자리, 420일부터 520일까지는 황소자리, 521일부터 621일까지는 쌍둥이자리로 구분 짓는다. “언젠가 나는/ 태어나지 않은 별에게 노래를 들려준 적 있다.”는 상상력의 산물이요 오늘 뭐 하지, 묻기도 전에/ 한 점이 되어 날아간 초저녁별을/ 노래한 적 있다.”는 경험담일 수 있다. 별의 운행에 자신의 앞날을 연결시키곤 했던 인간의 그 조상은 운명론자였을 것이다.

 

  ‘은 환갑(還甲)인가? “태어난 것을 모르는 노래가 태어나기 위해 돌아온다.”도 강 시인이 아니고선 표현할 수 없는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생일 축하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몇 % 되지도 않는다. , 그런데 아무리 평균수명이 늘어나도 오래 사랑했던 사람들과 방금 인사를 나눈 벌레들과/ 헤어지는 순간을 연습할 때가 온다. 생일이 있었기에 임종의 날도 있다. 일생 동안 피는 꽃으로 오는 것이 생일인데, “한 잎, 한 잎, 꽃잎 떨구며 먼 우주에서스스럼없이 온다. 내가 있어서 우주가 있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면? 우주야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인가.

 

  내가 낳아달라고 했던가? 태어나서 보니 내 생일은 잊혀진 계절인데, 부모님이 낳고 싶어서 낳았으면 나를 잘 돌봐주어야 하질 않는가. 생신을 제대로 안 챙겨 드렸다고 화를 내시다니!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 날이니 서로 덕담하고 축하하고 선물하고……. 그런 생일이 되면 좋겠다. 불가에서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하였다. 때가 되면 반드시 헤어져야만 할 우리이니 생일이나마 선물도 하고 축하도 하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무개의 생일 축하합니다.”“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로 시작되는 그 노래 말고 우리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참신한 곡이 나왔으면 좋겠다.

 

  [강영은 시인]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미네르바》로 2000년에 등단.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그리운 중력』 등과 시선집 『눈잣나무에 부치는 詩』가 있다.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세종우수도서,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었다. 문학청춘작품상,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 등을 받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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