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45】 홍외숙의 "출몰"
출몰
홍외숙
철로 빚은 짐승들이 어둠을 찢어댄다
야밤의 포효에 불면을 앓는 도시
별빛도 경기(驚氣)를 한다
귓전의 벌떼 같은
날리는 옷자락에서 떨어지는 허물들
사자의 갈기와 반짝이는 용의 비늘
전생을 데리고 와서 빌딩 숲을 질주한다
사람 형상을 덮어쓴 불안의 후손들이
아스팔트에 발굽 대신 바퀴를 찍는다
오빠들,
고독의 광기
그 뒷자리 앉아 보는 밤
《가히》 (2025. 겨울호)

한밤중 답답함이 가슴에 똬리 틀 때,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자동차 질주 소리가 때론 시원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시는 한밤중에 도시를 가르는 금속성의 진동으로 시작된다. 곧게 뻗은 야간 도로 위를 폭주족의 오토바이가 달린다.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어둠을 찢는다. 그들의 밤은 휴식의 영역이 아니라, 포효와 속도로 점령하는 생명체로 설정했다.
첫째 수 “야밤의 포효에 불면을 앓는 도시”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도시가 마치 감각을 가진 존재처럼 놀라고 흔들린다. 폭주족의 시끄러운 소리는 잠들지 못하는 도시, 잠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들이 도시의 불면을 만들어 낸다.
둘째 수 “날리는 옷자락에서 떨어지는 허물들” 밤공기에 흩날리는 그림자 같고 스스로 뒤를 털어내며 앞으로 질주하는 생의 잔해 같다. 폭주족이 남기고 가는 바람의 꼬리, 불꽃같은 헤드라이트, 쏟아지는 배기가스 그것들은 도시의 피부에 붙었다 흩어진다.
셋째 수 “사람 형상을 덮어쓴 불안의 후손들이” 인상적이다. 폭주족들은 때로는 과시적이면서 자기 존재를 시험하는 청춘들이다. 그들은 사자의 형상을 걸친 듯 호기롭게 내달리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의 불안을 안고 있다. 사회가 품어버린 무기력, 상실, 억눌린 욕망의 표현이다. 도시를 질주하는 것은 그저 소음과 속도가 아니라, 정체성을 찾지 못한 후손들의 불안한 맥박이다.
“오빠들 / 고독의 광기“ 광기와 고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밤의 속도를 택한 이들은 누구보다 외롭고 그 외로움을 달리는 소리로 씻어내려 한다. 그들이 지나간 뒤 남는 건 도시의 진동, 바퀴 자국, 그 뒷자리에 앉아 보는 화자의 마음일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인 「출몰」은 시의 주체들이 ‘어둠과 빛, 규범과 일탈, 불안과 욕망의 경계를 드나든다. 뿐만 아니라 야간의 도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세대적 불안, 시대의 정서를 기계적 이미지 속에 녹여 내는 것도 이색적이다.
폭주족의 질주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도시와 시대가 만들어낸 불안과 고독이 언어의 속도로 달리는, 현대의 비가(悲歌)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밤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속도로 뒤엉켜 달리고 있다면, 성탄의 빛이 그들에게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