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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61] 신미균의 "자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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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신미균

 

초등학교 다닐 때

한 살 터울 언니와 내가

귀한 귤 하나를 얻었다

 

언니 한 조각 나 한 조각

조심조심 먹다 보니

마지막 딱, 한 조각

남았다

 

순간 둘이 동시에

손이 닿았다

서로 먹겠다고

울고불고 엄청 싸웠다

 

뭔가 틀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한 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여름이라 좀 비싼

귤을 사 가지고 갔다

 

하나를 가지고 반도 못 먹던 언니가

나를 보고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 껴안고

한참을 웃다 울었다

 

―『빈티지풍의 달』(파란, 2026)  

자매 _ 신미균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형제라는 것

 

  이 시는 시작법을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의 선생님이라면 쓰지 말아야 할 시의 대표작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은유나 직유 같은 비유법, 상징이나 이미지 구사, 알레고리나 아이러니의 사용, 역설(paradox)의 기교, 애매성(ambiguity), 다의성( polysemy), 낯설게 하기 등 시창작을 위한 온갖 기교가 다 있는데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너무나 담백하게 과거지사 하나와 현실상황 하나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시집이나 문예지를 받아보고 수십 편을 통독해도 감동을 주는 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기교는 우수한데 이상 시인의 말대로 기교는 절망을 낳기 때문이다. 제멋에 도취되어 방언(放言)을 하는 경우도 있고 무언가 있을 것 같지만 끝내 뇌리에 남는 것이 없는 양파 같은 시도 있다. 그런데 신미균 시인의 이 시는 왼쪽 가슴에 훅을 넣어 숨을 한동안 멈추게 한다.

 

  어린 자매는 경쟁관계가 될 수 있다. 언니여서 억울할 때가 있고 동생이어서 억울할 때가 있다. 한 살 차인데 언제나 비교가 된다. 미울 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귤이 귀한 과일이었고 꽤 비쌌다. 귤로 인한 자매간의 싸움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월이 흘렀는데 다른 일로 틀어졌나 보다.

 

  이 시에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부분이 있다. 마지막 행 한참을 웃다 울었다이다.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시는 사실에 근거했고 무기교여서 오히려 큰 감동을 준다. 시인이 직접 경험한 것일 수도 있고 지인의 경험담을 시로 옮긴 것일 수도 있고 상상력의 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소식도 안 전하면서 살던 자매가 추억어린 귤 때문에 한참을 웃다 우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진한 감동을 나는 느꼈는데 다른 독자에게는 이 시가 시시한시로 읽힐까? 감동을 주는 시를 만나서 기뻤다.

 

  [신미균 시인]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96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웃는 나무』『웃기는 짬뽕』『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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