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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7】 2024년의 12·12사태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2024년의 12·12사태


김선호 

 

  아닌 밤중 홍두깨요 마른하늘 날벼락이라

 

  연말 모임 잦은데다 마음마저 들떴는지 횡단보도 건너다가 발목이 치였는데 그날이 우연찮게도 1212일이라 통증이 번지는데도 옛날 생각 퍼뜩 나데 상병쯤 되고 보니 눈치 제법 살필 때라서 적막이 어찌 무거운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라 냉랭한 병영 공기에 고참들도 얼어붙고 어둠 쫓는 총소리가 머릿발을 세우는데 이튿날 소식을 들으니 세상이 바뀌었드만 지난해 난리 때 보니 요즘 군인은 다르데이 멋모르고 따라왔다가 아니다 싶었는지 상관의 겁박 명령도 당당하게 거부하드만 ‘12’라는 숫자는 에누리가 얄짤없데이 일 년은 열두 달이고 자축인묘 12지에 시간도 열둘씩 나눠 밤낮으로 바뀌잖드나 12를 또한 읽으면 시비로 소리 난데이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시비 건다 안 하드나 졸병 때 묵과한 벌을 오십 년 다 돼 받은 기라

 

  시비가 두 번이나 겹치니 피할 재간 있겠드나

1979년 12월 12일의 중앙청 전경
1979년 12월 12일의 중앙청 주변 전경(사진자료-국가기록원)

2년 전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관람객 수는 1,300만을 넘는다. 19791212일에 발생한, 이른바 ‘12.12 군사반란이 모티프다. ‘10.26 사건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신군부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등 쿠데타를 일으켰다. 5.18 민주화운동을 짓밟으며 결국 정권도 탈취했다.

 

당시 노량진 소재 병참부대 상병이던 필자의 복무기간은 ‘10.2612.12, 5.17, 5.18’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한다. 신군부의 어떤 조처가 있었는지, 회사들이 알아서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군인은 시내버스를 그냥 탔다. 요금을 받은 시외버스는 대기행렬보다 먼저 태워줬다. 전역할 땐 국난극복기장도 달아줬다. 전투부대도 아니고, 사건에 개입할만한 여지는 더욱 없는데도 그랬다. 방조해줘서 고맙다는 사례였을까?

 

지난해 ‘12.3 계엄당시 사태확산 방지에 분투한 군인포상을 놓고 공방이 시끄러웠다. 조직 특성상 복종이 우선이라는 체계 가치와, 위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정의 가치 간의 충돌이다. 흥분한 부하들을 진정시켜 시민과의 충돌을 막고, 상급부대의 탄약지급 지시를 묵살하고, 헬기 비행 승인을 거부하고, 그래서 파국으로 치달을 뻔한 나라를 구했는데, 비난할 수 있을까? 무조건의 복종보다 우러를 만한 가치여야 한다.

 

46년 전 12.12 반란 당시 육군 상병은 벌써 고희가 코앞이다. 알았든 몰랐든, 자의든 타의든 침묵했던 허물을 반세기 만에라도 청산(?)하니 가뿐하다. 한참 고생은 했지만, 날짜를 맞춰 발목이 골절된 건 어쩌면 커다란 행운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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