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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AI 시대에 실력이 쌓이는 자리는 어디인가

작가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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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력은 결과물을 고르는 눈이다

직원 한 명이 기획과 디자인, 코딩까지 혼자 끝냈다는 소식이 이제 낯설지 않다. 기획자가 시안을 뽑고, 디자이너가 동작하는 화면을 배포한다. 오랫동안 직군을 갈라놓던 경계가 흐려졌다.

 

만드는 일이 쉬워지자 골라내는 일이 중요해졌다. AI는 언제나 그럴듯한 것을 내놓기 때문이다.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물었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넘길 것이 늘어난 기획자

 

A사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한유리 팀장에게 일의 끝은 기획서를 디자이너에게 넘기는 지점이었다. 지금은 그 지점이 한참 뒤로 밀려나 있다.
 

"예전에는 상세페이지를 이미지 한 장으로 예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AI가 크롤링할 수 있게 텍스트 구조를 짜는 일까지 같이 챙겨요. 구조만 넘기는 게 아니라 디자인 톤이나 배치를 미리 잡아서 넘기죠."

▲한유리 팀장의 일은 기획서를 넘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넘기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이 늘었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고 해서 전문가의 영역까지 쉽게 메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설픈 풀스택은 제대로 나눠 맡은 쪽보다 못한 결과를 낸다. 깊이 파본 분야가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는 판단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코딩은 이제 AI가 너무 잘해요. 하지만 화면이 왜 안 팔리는지, 코드가 어디서 어긋났는지 알아채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죠."

▲기획을 맡고 있는 A사 한유리 팀장. 그는 코딩은 AI가 잘하지만 화면이 왜 안 팔리는지 알아채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순서가 있다. 자기 전문 영역을 확실히 다져놓는 것이 먼저고, 다른 영역으로 손을 뻗는 것이다. 그리고 올라온 결과물이 쓸 만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면 된다. 직접 시안을 그리지 못해도, 받아 든 시안 중 어느 것이 안 될지는 짚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확인할 것이 늘어난 디자이너

 

B사의 디자이너 김단비 대리는 기획자에게 기획을 받아 시안을 그려왔다. 지금은 시안을 동작하는 화면으로 만들어 직접 내보내고 확인한다.

 

"저는 일단 만들어봐요. 여러 번 시도해서 왜 안 됐는지가 제 기준이 되더라고요." 

▲디자인을 맡고 있는 B사 김단비 대리. 그는 만들 수 있게 된 것과 알게 된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도 예전에는 실무를 오래 반복하며 감각을 키웠다. 지금은 시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었고, 그만큼 시도 횟수가 늘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시안은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 만들어 내보낸 화면은 결과가 돌아온다.

 

"틀린 걸 빨리, 그리고 많이 보는 게 저한테는 공부가 돼요."

 

다만 그는 그 기준을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스스로 되묻는다. 직접 만들어보고 결과까지 확인한 일에는 판단이 서지만, 그렇지 않은 일까지 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배포까지 해낼 수 있게 되었지만, 트래픽이 몰릴 때 무엇을 먼저 의심해야 하는지 같은 개발자의 감각을 AI가 대신 쥐여주지는 않았다. 기획자가 시장과 고객을 훑어 범위를 잡아내는 폭도 마찬가지다.

 

"만들 수 있게 된 거지, 알게 된 건 아니더라고요."
 


낮아진 것은 만드는 문턱이었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서로를 모른 채, 두 사람이 닿은 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구는 만드는 문턱을 낮췄지만 판단할 일은 늘었다. 예전에는 실력이 부족하면 결과물이 어설퍼서 스스로 알아차렸지만, 이제는 어설픈 판단도 매끈한 형태로 출력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진짜 위험이 여기에 있다. AI는 언제나 그럴듯한 것을 내놓기 때문에, 틀렸다는 것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그럴듯함에 속아 넘어가는 순간, 시도 횟수는 늘어나는데 기준은 자라지 않는다.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시도는 백 번을 해도 한 번이다.

▲높아진 생산성만큼 판단할 일은 늘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는 끝까지 파야 한다. 그 분야를 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머지를 판단할 기준을 얻기 위해서다. 자기 분야에서 수없이 틀려본 사람만이 다른 분야에서 올라온 결과물의 어색함을 알아챈다.

 

나머지 영역에서 필요한 건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아는 것이다. 지금은 AI 때문에 모르고 손댄 일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묻고, 판단해야 한다. 이 질문이 없는 사람은 전문가를 불러야 할 시점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만든 것을 반응이 돌아오는 데까지 가지고 가보면 좋겠다. 실제로 어땠는지가 돌아와야 그 시도가 한 번으로 남는다. 실력은 그렇게 결과가 돌아오는 자리에서 쌓이기 시작한다.

▲결과물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결국 AI 시대에 남는 사람은 세 가지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한 분야를 깊이 파본 데서 나온 안목, 그 안목이 어디까지인지 아는 눈, 시행착오를 흘려보내지 않고 일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

AI는 충분히 뛰어나다. 그럴듯한 것을 내놓는 데까지가 AI의 몫이라면, 결과물을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작가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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