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순의 삼삼한 음악이야기 특별기획 ⑦ ] 《바이로이트에서 만난 바그너, 그리고 뉘른베르크 음악도시를 걷다》
오래된 광장과 성벽, 그리고 가족과 함께 걸으며 발견한 삶의 노래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만나고 밤베르크를 지나, 이번 여행의 발걸음은 뉘른베르크(Nürnberg)로 향했다.
뉘른베르크라는 이름 앞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인 나는 자연스럽게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떠올렸다.
악보와 무대에서 수없이 접했던 이름을 실제 도시의 광장과 골목에서 만난다는 것은 묘한 경험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걷는 길이다.

오페라 속 도시가 눈앞에 나타나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중세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통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예술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실제 뉘른베르크의 돌길을 걸으니 작품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하우프트마르크트에는 고딕 양식의 프라우엔교회(Frauenkirche)와 섬세한 조각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분수(Schöner Brunnen)가 서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건축물 사이로 오늘의 사람들이 걷고 아이들이 뛰어논다.
과거와 현재가 한 광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오래된 성벽을 걸으며 생각한 ‘전통’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명가수》가 던지는 질문이 떠올랐다.
전통이란 과거의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딛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성악을 가르치는 나에게도 익숙한 질문이다. 벨칸토라는 오랜 전통을 배우지만 결국 그 기술을 통해 세상에 들려주어야 하는 것은 자신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성벽과 현대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뉘른베르크의 모습에서 나는 음악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전통은 박물관 속에 보관될 때보다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사용될 때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할머니에게는 역사, 손자에게는 놀이터
그런데 이날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의외로 거창한 문화유산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오래된 교회와 건축물을 바라보는 동안 어린 손자는 광장에서 공을 차며 신이 났다.
나에게는 바그너와 중세의 역사가 떠오르는 광장이지만, 아이에게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커다란 놀이터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웃음이 났다.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여행은 다르다.
그리고 어쩌면 예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작곡가가 남긴 하나의 작품을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르게 듣는다.

결국 여행도 음악도 ‘사람’에게 돌아온다
하루 종일 걸은 뒤 가족과 야외 식당에 앉았다.
독일 음식과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리고 식탁을 둘러싼 웃음소리. 유명한 관광지를 하나 더 보는 것보다 이런 시간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바이로이트에서는 거대한 바그너의 음악에 압도되었다면, 뉘른베르크에서는 조금 다른 음악을 들었다.
가족이 함께 걷는 발걸음, 아이의 웃음, 저녁 식탁에서 오가는 이야기….
악보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이것 역시 삶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앙상블이었다.

해가 지면서 오래된 건물과 강 위로 불빛이 내려앉았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에서 만난 바그너의 음악을 다시 생각했다.
수백 년 된 도시가 오늘도 살아 있는 이유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사랑하고, 걷고, 웃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오래된 명곡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때, 음악은 다시 현재가 된다.
지영순의 한 줄
“전통은 오래된 것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울릴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예술이 된다.”
뉘른베르크에서 나는 바그너의 ‘명가수’만을 만난 것이 아니다.
오래된 도시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하루 속에서 예술이 결국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나의 독일 음악 여행에는 또 하나의 노래가 더해졌다.
함께 걸었기에 더욱 오래 기억될, 뉘른베르크의 노래이다.
Soprano 디바돌체 지영순 교수

지영순 교수 이화여대 성악과 졸
이탈리아 빠르나조아카데미아 졸
이탈리아 오페라하우제아카데미 아디플로마
러시아 쌍페떼르부르그음악원 디플로마
오페라 라보엠,카르멘,휘가로의 결혼 등 주역 출연
주성대,청주대,서원대,경기대대학원 강사 역임
현, 뮤직라이프 대표,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