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AI는 빠르지만, 인간은 걸어야 한다
길을 나서면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릅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걷고, 누군가는 천천히 걷습니다. 누군가는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누군가는 집 앞 골목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의 운동을 마칩니다. 그런데 걷기를 오래 하다 보면 한 가지 생각에 이릅니다. 건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남보다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움직임을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AI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질문하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오고, 글쓰기와 요약, 번역, 이미지 생성, 데이터 분석까지 기계가 대신합니다. 과거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리함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의 몸은 움직일 기회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걷는 일을 대신하고, 엘리베이터가 계단을 대신하고, 스마트폰이 기억을 대신하고, AI는 이제 생각과 판단의 일부까지 대신하고 있습니다. 삶은 편리해졌지만, 몸은 점점 덜 움직입니다.
이것은 감상적인 우려가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체활동 부족뿐 아니라 장시간 앉아 있는 좌식 행동 자체를 독립적인 건강 위험 요인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권고합니다. 모든 신체활동은 의미가 있으며, 적은 양이라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에게 남겨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걷기라고 생각합니다. 걷기는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과소평가됩니다. 특별한 기계도, 비싼 회원권도, 복잡한 기술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기계가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고, AI가 가장 빠른 길을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고 그 길을 내 발로 걸어가는 일은 결국 나의 몫입니다. AI 시대의 걷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몸을 기계에 온전히 맡기지 않겠다는 작은 독립 선언입니다.
건강은 기록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걷기는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의 근거를 가진 운동일까요. WHO는 2020년 가이드라인에서 성인에게 주 150~300분의 중강도 유산소 신체활동, 또는 75~150분의 고강도 활동을 권고했습니다. 주요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운동은 주 2일 이상입니다. 65세 이상도 유산소 활동 권고량은 동일하지만, 여기에 균형 훈련을 포함한 복합적 신체활동을 주 3일 이상 추가하도록 권고합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시 65세 이상에게 주당 최소 150분의 중강도 유산소 활동, 주 2일 이상의 근력운동, 그리고 균형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권고합니다(CDC). 빠르게 걷기는 이 중강도 유산소 활동의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한편, 우리가 흔히 절대 기준처럼 여기는 하루 만보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습니다. 15개 코호트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Paluch 등, 2022)에 따르면, 하루 걸음 수가 늘어날수록 사망 위험은 꾸준히 감소하지만 60세 이상에서는 하루 약 6,000~8,000보에서 그 감소 폭이 정점에 이르러 완만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만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과학적 절대치가 아니라, 걷기를 장려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적 숫자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오늘 몇 걸음을 걸었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아직 계단을 힘차게 오를 수 있는가. 의자에서 혼자 일어날 수 있는가.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집까지 돌아올 수 있는가. 길에서 잠시 균형을 잃었을 때 몸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는가. 건강은 기록이 아니라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몇 년을 더 사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느냐' 즉 건강수명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노년과 자기 발로 동네 한 바퀴를 걸을 수 있는 노년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움직임이 되고, 내일의 움직임이 몇 년 뒤의 신체 기능에 영향을 줍니다. 걷기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일상적인 건강 투자입니다.
걷기는 몸으로 하는 사유입니다. 제가 걷기를 권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걷다 보면 생각이 움직입니다. 책상 앞에서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던 일이 길 위에서 다른 각도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체감만이 아닙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2014년 실험 연구에서 걷는 동안과 걸은 직후에 창의적 사고 산출량이 앉아 있을 때보다 평균 약 60% 높게 나타남을 보고했습니다. 물론 걷는다고 누구에게나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규칙적인 신체활동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과 인지기능, 전반적인 웰빙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꾸준히 축적되어 왔습니다. 걷기는 다리를 움직이는 일이자,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AI 시대에는 이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AI는 답을 매우 빠르게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빠른 답이 반드시 깊은 생각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AI가 만들어준 답을 받아든 뒤 인간에게 남는 질문은 오히려 이런 것들입니다. 정말 그런가. 무엇이 빠져 있는가. 다른 관점은 없는가. 이것이 내 삶에서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이 답에 동의하는가. AI는 답변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 답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그러려면 때때로 화면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걷다 보면 나무가 보이고, 꽃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계절이 보입니다. 어제와 다른 하늘이 보이고 바람의 방향도 느껴집니다. AI는 수많은 이미지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오늘 내가 직접 바라본 나무 한 그루의 기억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AI가 정보를 제공한다면 걷기는 경험을 제공하고, AI가 데이터를 연결한다면 걷기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연결하며, AI가 답을 만들어낸다면 걷기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AI 시대의 걷기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걷기는 몸으로 하는 사유입니다.

다만, 정확성을 위해 두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첫째, 숫자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스마트워치가 알려주는 걸음 수와 칼로리, 심박수는 활동량 관리에 유용한 도구이지만 건강의 전부는 아닙니다. 건강 상태와 연령, 체력, 관절 상태, 생활환경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평소 거의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만보를 목표로 무리하다 통증으로 중단하는 것보다, 자신의 상태에 맞게 작은 양부터 시작해 점차 늘리는 것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WHO와 CDC 역시 권고량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무리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오늘 3,000보를 걸었다고 해서 10,000보를 걷는 사람보다 건강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어제 2,500보였는데 오늘 3,000보를 걸었다면 그것 역시 변화입니다. 건강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의 대화입니다.
둘째, 걷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경계해야 합니다. 걷기는 훌륭한 기본 운동이지만 모든 운동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특히 65세 이상에서는 걷기와 함께 근력운동과 균형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WHO와 CDC의 공통된 권고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심폐지구력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리에 힘이 있어야 하고, 몸통을 지탱할 힘이 있어야 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하며, 넘어졌을 때 큰 부상을 입지 않도록 몸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노년의 운동은 세 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걷고, 근육을 키우고, 균형을 잡는 것. 운동은 몸을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오래 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속도를 회복하는 일, AI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대신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남겨진 질문이 더 선명해집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
AI는 나보다 빨리 계산하고, 나보다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나보다 빠르게 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대신 사랑할 수 없고, 내가 책임져야 할 선택을 대신 책임질 수도 없으며, 내가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인간의 행동이 중요해집니다. 걷는 것, 천천히 생각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자연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매일 걷는 팔십의 어르신을 봅니다. 구십에도 자기 발로 산을 찾아가는 분을 봅니다. 그분들에게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오늘도 일어나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집 앞 골목 한 바퀴도 좋고, 5분도 좋고 10분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삶은 거창한 결심보다 반복되는 작은 행동에 의해 바뀌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이 없으면 천 걸음도 없고, 한 번의 질문이 없으면 새로운 생각도 없으며, 한 번의 생각이 없으면 새로운 삶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AI 시대의 건강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AI에게 생각을 맡기더라도 삶까지 맡기지는 맙시다. AI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일까지 맡기지는 맙시다. AI가 세상을 설명해주더라도 내가 직접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는 맙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고삐는 내가 쥡시다.
오늘도 걸으십시오. 남보다 빨리 걷기 위해서도, 남보다 많이 걷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내 삶을 내 발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무조건 많이가 아니라, 내 몸에 맞게, 내 생각을 따라, 그러나 꾸준히 걸으십시오. 그 한 걸음이 오늘의 건강을 만들고, 오늘의 생각을 만들고, 내일의 삶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얼마나 빨리 걸었느냐보다, 멈추지 않고 얼마나 자기 길을 걸었느냐로 기억된다는 것을.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