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1] 문희숙 시인의 "오목눈이"
오목눈이
문희숙
장터 가는 소를 몰 듯 늦은 삶을 몰고 간다
웅크린 가랑잎도 굴러야 할 길 있는데
아침의 가지로부터 저녁으로 옮겨 앉아
피었다 사라지는 꽃 그림자 스치며
구멍만 한 창틈으로 세상을 지저귀는 새
너는 너 나는 나에 불과한 오목 거울 앞에서
![오목눈이 [이미지:류우강 기자]](https://koreaartnew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0915/1757887607265_20246972.png)
문희숙의 시 「오목눈이」는 작고 연약한 새 한 마리를 통해 인간 존재의 길을 비춘다. 삶은 마치 장터로 끌려가는 소처럼, 이미 늦어버린 시각에도 어쩔 수 없이 몰아가야 하는 여정처럼 묘사된다. 시인은 이 늦은 삶을 바라보며,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게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이 시 속의 이미지는 끝내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이다. 꽃은 피어나자마자 그림자처럼 스러지고, 낙엽은 굴러야 할 길조차 무상하다. 좁은 창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새의 모습은 곧 우리의 한계와 왜곡된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너는 너 나는 나에 불과한"이라는 선언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는 고립된 존재의 조건을 뼈아프게 일깨운다. 삶은 결국 흩어지고, 우리는 각자의 오목한 거울 속에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허무의 풍경은 곧 실존적 긍정의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늦은 삶이라도 여전히 "몰고 간다"는 표현은 자기 삶을 끝까지 짊어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낙엽조차 굴러야 할 길이 있듯, 모든 존재는 크고 작음을 떠나 자기 몫의 길을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잔잔히 울린다. 꽃 그림자는 사라지지만, 바로 그 덧없음이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하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말은 고립이 아니라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목눈이」는 이렇게 허무와 긍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작은 새의 노래는 무의미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끝내 자기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시인이 그려낸 오목한 거울은 우리 존재의 굴절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왜곡 속에서도 저마다의 고유한 빛을 반짝이게 한다. 삶은 덧없고 고독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더욱 간절히 살아가야 한다는, 모순된 깨달음이 이 시의 울림일 것이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