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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37 】박홍재의 "볼트와 너트"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볼트와 너트

 

박홍재

 

잘못된 것 한두 번씩 뒤집어 기름 치듯

 

붙박이로 한 곳에만 눌러앉아 있다 보면

 

무료한 자신의 몸짓 잊고 살기 마련이다

 

 

헐거운 너와 내가 스패너에 몸을 맡겨

 

맞물려 잇닿은 길 겻 디디어 닿는 거기

 

흔들려 다시 조인 하루 앙다물기 마련이다

 

 

『핑계에도 거리가 있다』 (2025. 작가)

볼트와 너트 / 박홍재이미지: 강영임기자
볼트와 너트 / 박홍재[이미지: 강영임기자]

모든 관계는 조임과 헐거움 사이를 오간다.

 

낯선 이를 만날 때, 낯설고 불편한 감정이 우리 곁에 머물지만 볼트와 너트가 서로를 향해 나선형으로 다가가듯, 우리도 관계 속에서 천천히 자신을 드러내고 맞춰간다.

 

붙박이로 한 곳에만 눌러앉아 있다 보면 / 무료한 자신의 몸짓 잊고 살기 마련이다의 진술처럼 관계 속에서 고정된 역할에만 머물러 있으면 스스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관계는 결국 스패너가 개입해야 조여진다. 스패너는 외부의 힘, 즉 사회나 상황, 시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조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의해 조금씩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맞물려 잇닿은 길 끝에서 시인은 닿는 거기를 본다. 그것은 완전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를 버티게 하는 조임의 순간일 것이다.

 

흔들려 다시 조인 하루 앙다물기 마련이다

관계의 피로와 내면의 결의, 삶 전체가 이 한 문장에 들어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도 자꾸 흔들린다. 하루를 앙다문다는 것은 무너질 듯한 마음을 스스로 조여 붙드는 일이다.

 

「볼트와 너트」는 공업적 언어, 노동의 언어를 시적 언어로 전환해 시인만이 쓸 수 있는 개성적인 언어로 승화했다. ‘볼트’, ‘너트’, ‘스패너같은 차가운 금속성을 생명적 언어와 결합하면서 금속도구와 인간의 경계를 허문다. , 기술적 사물의 세계가 인간의 감정과 공명하는 지점, 그곳이 이 시의 빼어난 미학이다.

 

볼트와 너트는 단지 서로를 묶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함께 흔들리고 맞물리며 그 속에서 자신을 다잡는다. 삶이란 그렇게 매일 조금씩 조여 가며 살아가는 일이다. 너무 헐겁지도, 너무 조이지도 않게 서로의 방향에서 돌아가며 살아가는 일이다.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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