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아가, 명심해라 - 김유정
아가, 명심해라
김유정
아흔 아홉인 외사촌, 소연 언니가 다쳤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생각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손을 잡았다. 평소에 수영을 잘하고 몸을 꼿꼿이 바른 자세로 계단도 곧잘 걷더니 밝은 모습이었다. 어깨를 다쳤는데 간단한 깁스로 꼼짝 안 하면 된단다. 미소로 서로 눈인사를 했다. 잡은 손을 어루만지더니 한참 나를 바라보았다.
"얘야, 너네 할머니 참 좋은 분이셨다."
"네, 다들 그러데요."
"얘, 지자야. 너네 할머니 정말 좋은 분이셨다. 내가 학생 때 방학에 고모님댁에 가 머물 때 보면 너네 할머니 정말 좋으셨다. 그렇게 인자한 분은 못 봤다."
얼마 있지 않아 또 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다. 그것도, 너무 진지하게. 함께 간 언니네 딸 미혜를 근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너네 엄마, 혹시 인지장애, 치매 초기 뭐 그런 것 아니니?"
우리 둘은 눈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언니, 빨리 낫고 오래 우리 곁에 있어요. 나를 위하여. 언니 안 계시면 이제 이 세상에 친가, 외가 어느 쪽도 나의 어릴 적을 기억하고 옛날이야기를 할 사람 아무도 없네."
"그러자. 나 참 너 이뻐했는데. 나처럼 다치지 말고 건강해라."
할머니 주위엔 늘 사람들이 모였다. 시골엔 항상 일이 많아 모여 잡담할 때도 손에 일거리를 갖고 있었다. 모시를 째기도 하고 푸성귀를 다듬기도 했다. 며느리 험담을 하고 하소연을 했다. 동무들과 숨박꼭질이나 놀이를 하며 어른들의 이야기가 오며가며 들렸다.
"이 사람들아, 며느리 귀히 여기게. 며느리 같이 귀한 사람이 오디 있는가. 자손 낳아주제, 부모 봉양하제. 선영 모시제. 그리 귀한 사람 귀히 여기시게."
한참 며느리 험담을 하던 사람들은 소쿠리를 들고 인사하고 떠나갔다.
엄마에게 들은 할머니의 일화는 많다. 갓 시집을 와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 밥할 물을 길으러 갔었단다. 그때는 하도 옛날이니 집집마다 우물이 없었고 동네 공동 우물을 길어 먹던 시절이었다. 이른 아침이니 시야도 완연히 밝지 않았고, 물항아리를 머리에 있는 또아리 위에 얹어 돌아서는 순간 바닥 살얼음에 빙그레 미끄러져 물항아리를 내동댕이쳐 깨뜨렸단다.
이른 아침 첫물은 중요하여 정한수로 한 그릇 떠 놓고 아침을 지어야 하는데 새색시가 보통 일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혼비백산하여 할머니 방에 들어가 고하려 했더니, 자리에서 놀라 일어난 할머니는 머리에 물이 뚝뚝 흐르는 엄마를 보고 놀라, "얘야, 얼마나 추웠냐?"하며 꽁꽁 언 엄마의 손을 당신의 젖가슴 속에 넣어 녹여주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하였다. 외할머니는 공씨 집 유교 법도를 중요시 하여 엄하였고 할머니는 순하고 다정하여 시어머니가 훨씬 좋았다고 했다.
나는 이 박월아 할머니의 아이였다. 밤마다 등을 쓸어주며 재워주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가는 절 스님에게서 들은 법문을 들려주었다.
"할머니, 내 동무 누구가... " 쫑알쫑알 불평을 하면, "아가, 하루를 참으면 백 날이 편하단다." 이 말은 매일 들은 내 귀에 못으로 박혔고 내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이 말은 내 삶에 좌우명이 되었다. 특히 결혼하여 대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삶과 남편 따라 해외에서 잠시 공관생활을 할 때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주 힘이 되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일단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 억울하여 변명하고 싶을 때 일단 침 한 번 삼키며 하늘이나 땅이나 알면 되지, 하고 넘기면 평화가 왔다.
지금까지 누구와 크게 싸워본 적 없이 그런대로 무난하게 지나게 하여준 내 삶에 감사를 드린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심향 단상]
작가의 할머니는 인품이 훌륭하신 분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칭송을 듣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손녀에게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루를 참으면 백 날이 편하단다." 라는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를 보고 자란 손녀도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일단 침 한 번 삼키고 하늘이나 땅이 알면 되지, 하며 그 순간을 넘겨 그런대로 평화로운 날들을 지내왔습니다. 추운 날 물 길러 갔다가 찬물을 쏟아 온 몸이 젖어 들어온 며느리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해주시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컵의 물을 엎질렀을 때 '아이 옷이 젖지 않았는지', '아이가 놀라지 않았는지'를 묻기보다 '왜 물을 엎질렀느냐' 라든지 '컵을 깨뜨렸다'라고 핀잔을 주지는 않는지요?
요즘에는 집집마다 수도가 있어서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수도와 전기, 난방, 에어컨, 온수, 자동차, 텔레비전, 세탁기 등으로 우리 생활이 너무 많이 편리해져서 옛날의 힘들었던 일들을 많이 잊고 삽니다. 부모님 세대가 겪으셨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너무 춥고 배고팠습니다.
그 시절에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먹을 물을 길어오고, 빨래는 냇가나 개천에서 하고, 다듬잇돌과 방망이로 두드려 구겨진 옷을 펴서 입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여서 음식과 난방을 하였습니다. 온돌방의 아궁이에 가까운 아랫목은 뜨겁고 윗목은 차가웠습니다. 집은 대부분 단독 주택으로 겨울철 냉기가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 방에 있던 물 그릇이 얼기도 하였습니다. 밤에 자면서도 코가 시리던 시절이지만, 이불 속에 발을 뻗고 옹기종기 붙어서 자며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감싸주었습니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지붕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마당에서 윗옷을 벗고 엎드려서 등에 물을 뿌리는 '등목'이라는 것을 하며 잠시 시원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나마 '등목'은 남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부모님 세대는 고생을 참 많이 하고 사셨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세대는 호강하고 사는 것이지요. 물동이 밑에 받혔던 또아리는 요즘 냄비받침처럼 생긴, 짚이나 헝겊으로 동그랗게 엮어 만든 것이고, 그 당시의 어머니들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으로 잡고 걷기도 하셨으니 '달인'의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박수근 화가의 작품('머리에 물건을 인 여인'과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그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속상할 때 참고 그냥 넘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함을 표현하지 않고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 받기 쉬워서 더 큰 어려움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때의 일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이 드러나 오해가 풀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해로 인한 따가운 시선이나 말들을 참고 견뎌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해하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 있다면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서서 도와주고 보살펴준다면 분명 살 맛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서로 선을 지키고, 서로에게 진실로 대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하여 이 어려운 세상살이를 조금 편하게 산다면, 행복도 더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며느리는 귀한 사람이니 귀하게 대해주셔서 집안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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