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56] 박민서의 "우크라이나"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우크라이나

 

박민서

 

북반구의 찬 기류 속으로 수많은 길들이 생기고 있다

 

목적지 없는 발자국들은 양손의 짐보다 몸이 더 무겁고 불꽃으로 날아온 공중좌표 따라 숨소리들이 힘없이 부서져 내린다

 

곡식의 저장창고를 비워가는 사람들

빈 밭의 낙곡들은 입을 길게 내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을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살기 위해 떠나는 새들은 발자국이 없다

씨앗보다 총알이 더 많이 박힌 땅

입을 굳게 다문 곡식들은 새날의 종자가 될 수 있을까

 

깃털이 큰 새들은 평온한 땅을 찾아갈 것이고

깃털이 작은 새는 봄날을 기다릴 것이다

 

싸우는 자와 떠나는 자의 슬픔의 각은 같다

지상에서 한꺼번에 치른 장례들

 

추위가 몰아치면 달의 그늘에서 죽은 새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따뜻한 묘지들 먼 북반구 쪽의 하늘은 잿빛

날개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아픈 식탁만 가득하다

 

오늘 우리의 저녁이 저들의 폐허 위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면

 

지상의 온기를 찾아 날아가는 새들은 어디쯤에서 쉬고 있을까

 

―『야간개장 동물원』(달을쏘다 시선, 2024)  

우크라이나_박민서 시인 [사진 : 구글 ] 

  [해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2022224일 푸틴의 명령으로 공습이 시작되어 양쪽 국가 간의 전면전으로 번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동슬라브족 전쟁을 다룬 시다. 이제 곧 전쟁 개시 만 4년이 된다. 1950625,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31개월 동안의 전쟁이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을 더 끌고 있다. 그래도 휴전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니 곧 끝날 것도 같다. 북한이 이 전쟁에 무기 지원은 물론 군병력까지 파견했다는 소식도 여러 번 들려왔었다.

 

  박민서 시인이 이 시를 쓴 시점은 두 나라가 한국전쟁의 고지전처럼 엎치락뒤치락할 때가 아니었나 한다. 어떤 날은 러시아가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고 어떤 날은 우크라이나가 이겼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까. 이 전쟁에서는 드론이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향후의 전쟁은 상륙작전, 고공침투작전, 기습작전이 아닌 드론 간의 전쟁이 될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전쟁을 수많은 길들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군대나 병기(兵器)를 기존의 인도나 국도로만 보낼 수 없으니 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전시에 잔도(棧道)들이 생겨난 것처럼. “살기 위해 떠나는 새들은 발자국이 없다는 시행은 피난민을 연상케 한다. 전시에는 엄청난 피난민과 난민이 생겨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광활한 들판의 곡식이 군량미로 대량 반출되었다. “씨앗보다 총알이 더 많이 박힌 땅이란 구절이 이곳이 전장임을 실감케 한다. 싸우는 자도 죽고 떠나는 자도 죽는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집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리울 것이다. “추위가 몰아치면 달의 그늘에서 죽은 새의 모습이 보이, “날개의 끝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아픈 식탁만 가득할 것이다. 전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빈다. 시인의 간절한 바람은 마지막 연에 은유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전쟁이 설사 러시아의 승리로 끝난다고 한들 그게 진정한 승리일까. 양 국가 사람들이 수천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산업시설, 농업시설, 학교, 공공건물, 주택가가 파괴되었을까. 세상의 한쪽에서는 올림픽이 열려 환호성이 이어지는데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다치고 죽고 있다. 제발 피난 가 있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자기 고향에 가서 씨를 뿌리게 하라. 꽃을 가꾸게 하라.

 

  [박민서 시인]

 

  이 시집은 제4회 시산맥 창작기금 공모 당선시집이다.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문학석사). 2019년 《시산맥》으로 등단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이승하시해설#하루에시한편을#박민서시인#우크라이나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