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칭찬으로 자라는 아이들 - 김영희
그 아이는 내 시선을 계속 피했다. 내가 가까이 가는 것조차 원치 않았다.
내가 가까이 가면 책을 가리며 손사래를 쳤다. 이유를 모르니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아이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다른 아이들 주변만 돌며 슬쩍 슬쩍 돌아봤다. '잘하고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조금도 자신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 방과 후 교사를 하게 됐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설렘과 기대감을 주었다. 국어와 영어, 수학을 책임지고 가르쳐야 하는 내 입장에서 아이들의 '현재 학습 수준'을 빨리 파악해야 하지만, 새로 온 선생님을 맞을 준비가 아직 안 된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한 반에 여러 학년이 섞여있고 각기 다른 어려움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아이들 각자의 학습 수준에서 시작하자'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모르는 부분에서 시작하기'로 정하고, '다른 속도'도 이해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여러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 그 아이들을 모두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도 있고, 기초가 부족해서 학과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맞춰가며 설명하고 확인하면서 진도를 나갔다.
수업 중에 조금만 빈틈이 생겨도 아이들은 집중이 안 되고 학습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그 빈틈을 어떻게 메울까? 고민했다. 문제 풀이를 빨리 끝내서 심심해 하는 아이, 기초가 부족하여 문제 풀이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 부족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열정이 가득한 아이도 있었다. 학습을 먼저 끝낸 아이는 동화책을 읽게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아직 끝나지 않은 친구들을 조용히 기다리도록 하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읽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로 문단 나누어 읽기'를 해보니 상대 아이가 읽을 때 더 잘 집중해서 듣게 되고, 글의 내용을 잘 이해하게 되어 문제의 답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어 문장을 읽을 때 목소리를 가다듬어 잘 읽으려고 노력하고, 다른 아이가 읽을 때는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집중하는 모습이 마냥 대견스럽고 귀여웠다.
곧 중학생이 될 아이들인데 영어 기초가 부족하여 걱정이 됐지만 기초부터 잘 쌓아야 하니 일단 영어 단어를 많이 읽게 하고, 읽은 단어를 간단한 문장으로 만들어 쓰게 했다. '영어단어 카드놀이'를 하며 단어를 읽고 뜻을 맞추는 게임을 하니까 더 흥미를 느끼고 여럿이 참여하며 재미있게 영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아이들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드디어 수업 시간을 즐거워하게 되었다. 문제를 맞출 때마다 "너무 잘했어" "참 잘했어" "와, 어떻게 알았어?" 등 큰소리로 칭찬해주었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잘하는 점을 칭찬해 주니 수업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내가 가까이 가는 것을 꺼려하던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세 자릿수 곱셈 문제'였다. 구구단을 다 외웠어도 곱셈은 아이들을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히게 했다. 곱셈은 잘했는데 자리를 찾아 더하고 쓰는 과정에서 안타깝게 틀리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다정하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옆에서 한참 설명을 하다가 보니 아이의 손이 나의 왼손 등에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상황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내가 놀라면 아이도 놀라서 손을 빨리 빼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를 설명하는 동안 아이는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그대로 올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거짓말처럼 아이는 수학에 자신감이 생겨서 수학 문제를 스스로 재미있게 잘 풀어나갔다. 자신 있게 수학 문제를 풀며 행복해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날 나는 가슴에 쿵!하고 감동과 전율이 왔고, 마음 한편에선 '아! 이제야 네가 나에게 마음을 열었구나!'하고 안도감이 들어서 어린아이처럼 너무 기뻤다. 그 순간은 아이와 내가 함께 해낸 기다림과 노력의 결과였다.
내 수업 방식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와 주었던 그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아이들 모두 내 제자들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어 뜻 깊은 시간이었다.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작가의 생각]
초등학교 4학년~6학년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방과 후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거나 수학을 잘하든지 노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든지 체육을 잘하거나 하여 그 능력은 다 다릅니다. 아이들이 여러가지를 잘하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학교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방과 후 수업'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부모님의 권유로 수업을 받기도 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서 부모의 퇴근 전에 안전하게 학교에 머물며 필요한 과목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이들의 자신감 부족'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들은 설명을 더 필요로 하나 모르는 체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
수업 시간에 배웠으나 이해를 못하고 지나가면 잘 모르니까 자신감이 떨어져서 질문에 답을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가기 싫어하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기초를 잘 닦으면 누구나 더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Whale Done!: The Power of Positiv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미국의 심리학자 켄 블랜차드, 타드 라시나크, 처크 톰킨스, 짐 발라드가 쓴 책)
고래는 조련사의 훈련에 의해 물속에서 뛰어오르고 빙그르르 돌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내밀며 갖은 재롱을 부립니다. 고래가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조련사는 고래가 좋아하는 먹이를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조련사는 고래를 훈련 시키기 전에 그들의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범고래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행동 양식을 연구하고, 그에 맞게 힘 들이지 않고 게임을 하듯이 쉽게 배울 수 있는 훈련을 시킨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지도한다면 충분히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을 믿어주고 이끌어 주면서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아이들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고 갈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며 사랑으로 잘 교육 받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칭찬으로 자라는 아이들' 을 보고 싶습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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