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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 보감 최영숙 작가, 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수필 부문 등단

작가 이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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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기도>, <진솔한 삶의 한 페이지> 수필 부문 등단...월간 한국수필 2026 4월호(통권 374호) FM 수원라디오 "시가 흐르는 냇물" 진행자 보감 최영숙 작가, <노을로 바람꽃으로> 시집 출간 이어 수필 부문 등단
[KAN] 보감 최영숙 작가, 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수필 부문 등단

[문학=코리아아트뉴스 이청강 기자] 96.3mhz FM 수원라디오 "시가 흐르는 냇물" 진행을 맡고 있는 보감 최영숙 작가가 월간 한국수필 2026 4월호(통권 374호)에 <그들의 기도>, <진솔한 삶의 한 페이지> 수필 작품으로 등단의 영예의 얻었다.

 

최영숙 작가는 <노을로 바람꽃으로> 시집 출간에 이어 한국수필가협회가 주관하는 <월간 한국수필> 2026 4월호를 통해 수필 부문에 등단했다. 

 

심사평을 맡은 박원명화는 "최영숙의 작품 <그들의 기도>와 <진솔한 삶의 한 페이지>는 경험과 기억을 중심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물의 깊이를 관찰하고 자아적 의미를 해석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며, 성찰과 깨달음의 본질이 들어있고, 마음을 치유하고 겸허한 마음을 공유하려는 사유에서 수필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한다고 심사평을 했다. 

최영숙 작가는 "수필이라는 또 다른 장르는 앞으로 전개될 저의 생에 어떤 해석을 더해 줄지 책임감이 들면서도 설레게도 합니다. 봄의 길목에서 또 다른 1막 2장을 펼쳐 봅니다." 고 소감을 밝혔다.


그들의 기도 / 최영숙

 

                                                                                                                   

섣달그믐 새벽달이 서녘을 지나 희미하게 사라질 즈음이다. 연례행사처럼 수종사에 가기 위해 정갈한 심신으로 외출 채비를 서두른다.오랜 시간을 같이 한 자동차에 몸을 싣고 그곳으로 향한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겨울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던 듯 살갗을 파고든다. 차가움 속에 피어나는 서릿발 같은 기운이 가슴에 차오른다.

 

운길산 아래 사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부터 하얀 것들이 하늘을 오르고 있다. 산안개인지 구름인지 눈발인지 정체가 묘연하다. 산 중턱쯤에야 그것들이 내 발밑에 흩뿌려져 날고 있다.

  

나는 한 마리 학이 된 양 시선을 멀리 그리고 길게 고정한다. 꿈속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선경(仙境)이 손에 잡힐 듯 달려오고 있다. 반도 중부의 속살을 헤집고 쉼 없이 달려왔을 남한강, 북동쪽 백두대간에서부터 북풍한설을 헤치고 숨 가쁘게 뛰어왔을 북한강. 두 물은 천년 만의 희열에 찬 상봉을 하듯 서로를 휘감고 하나로 승화하는 장소다. 

 

시선을 고정한 나의 뺨 위로 회한 섞인 이슬이 흘러내린다. 불이문 안쪽에서 나무 끝을 에이는 삭풍을 타고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세조(世祖)는 이 운길산을 지나다가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범종의 여운으로 들었다고 했다. 경지 아래에 있는 서울 아낙은 진여(眞如)의 종소리만 들을 수 있는 것일까? 본존(本尊)을 뵙고 오랜 습관처럼 산신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따라 돌계단이 마치 천상으로 이어진 듯 아득하다. 숨을 마저 고르고 무릎을 꿇는다. 절대자에게 자비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의 이익을 위해 구걸하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절실하게 얻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구하고자 하는 바가 머릿속에 잡히지 않아 엎드려 한참을 무념에 젖어 생각을 잊는다. 살면서 부대끼다 보니 갈등도 많고, 다른 목적도 많아져서인지 참배가 더 잦아진다. 절대자는 부질없는 나의 욕망을 사그라들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런 믿음을 마음에 조심히 품고 나는 기도를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성에서 쏟아지는 세속적 번뇌는 쉽게 초탈되지 않는다. 내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식들이 나의 간절한 기도의 주류가 된다. 세월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마음의 기울기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자신의 반성과 더불어 오십 배쯤 절을 올리다 지쳐서 꼼짝 못 하고 엎드려 있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체력의 소진을 느낀다. 덜컥 겁이 난다. 심호흡을 길게 하고 몸을 추스려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때다. 본능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상적인 장면이 있다. 바로 옆에 엎드린 한 쌍의 중년 부부의 모습이다. 절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불교식 재배를 올리고 있는 모습! 그들의 구슬땀은 평평한 오래된 나무 바닥을 적시고 있다. 그들이 구원하는 절실함의 이타행(利他行)을 시범으로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 간절한 기운은 내 전신에까지 스며들어 압도되더니 감화되는 느낌이다. 자리행(自利行)만 일삼던 내 모습을 보며 부끄럽다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삼십 분 정도 지났는데도 마치 서너 시간은 흐른 것 같다. 부부의 간절함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저들도 나처럼 집안의 복덕이나 자식들의 안락을 빌었던 것일까. 마음으로는 ‘두 분께 누구를 위해 무엇을 그렇게나 간절하게 빌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들의 표정에 묻어난 눈물겨운 비장함이 너무나 숭고해 보여 차마 물어볼 용기가 없다. 부부의 기도가 끝나고 평온함이 다시 찾아오길 희망할 뿐. 

 

두 사람이 법당을 나선다. 나는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했으나 갈림길이 하나가 되는 바람에 결국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형세가 되었다. 가깝게 붙어 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들이 나누는 말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들리는 소리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의 아버지인지 아들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분명 육 개월 시한부 생명이라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그들 분위기로 봐서는 산신각 기도에서 영감을 받은 건지 담담하고 그 어떤 슬픔이나 한(恨) 같은 게 담겨 있지 않아 보인다. 생을 초월한 도인의 대화처럼 들린다. 남의 이야기만 듣고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몸이 저리기까지 한다. 삶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삶 속에서도 짧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 저들이나 나나 똑같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부러 발걸음의 속도를 늦춘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들 부부에게서 세사(世事)의 능수능란함을 엿본다. 지극 정성으로 부부가 산신각에서 치열하고 애절하게 절하던 모습이 하산하는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유한한 생애를 핍진하게 살아가는 과정이 목적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진다. 우리는 많은 욕망 속에 살지만, 그 유한한 삶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일주문을 나와 예토(穢土)로 들어서는 하산길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올라올 때 알지 못했던 구불구불한 길들이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굽어져 보인다. 이제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고요한 세월을 넘은 하늘이 겨울 별빛 우수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작가 이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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