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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산’ 170점, 서울시립미술관 무료 회고전 - 산은 내안에 있다

류우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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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1916~2002) 탄생 11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를  19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유영국미술문화재단과 조선일보사와 공동으로 마련되었으며, 오는 10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70여 점으로 만나는 유영국의 세계
 

이번 회고전은 유화 115점을 비롯해 드로잉, 부조, 사진, 아카이브 등 총 170여 점을 선보인다. 단순히 대표작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60여 년 화업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푸른 바다’ 등 미공개작이 포함되어 유영국 예술 세계의 공백을 메우는 드문 기회가 되고 있다. 

유영국, 작품(Work), 1964, 캔버스에 유채, 130×194 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작품(Work), 1964, 캔버스에 유채, 130×194 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 근대 거장’ 시리즈의 첫 프로젝트로 기획했다. 연대기적 회고전이 아니라, 유영국 예술의 핵심 변곡점인 1964년 첫 개인전을 출발점으로 삼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독특한 구조를 택했다.

유영국, 작품(Work), 1989, 100×81 cm.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유영국, 작품(Work), 1989, 100×81 cm.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산은 내면의 구조
 

전시의 중심에는 유영국이 평생 탐구한 ‘산’이 있다. 그의 산은 실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과 내면의 리듬을 압축한 심상에 가깝다. 반복되는 삼각형 구조와 강렬한 원색의 충돌은 어느 순간 산의 형상을 넘어 색과 리듬의 감각으로 읽힌다. 전시장 입구에는 그의 문장 “산은 추상의 빈 그릇일 수도 있다”가 적혀 있어, 관람객에게 내면의 산을 마주하는 경험을 제안한다.

유영국, 직선이 있는 구도, 1949, 캔버스에 유채, 53×45.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직선이 있는 구도, 1949, 캔버스에 유채, 53×45.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유영국의 산은 눈에 보이는 실제 산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투영된 산”이라며 “자기 성찰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보가 넘쳐나는 AI 시대일수록 내면을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유영국의 탐구가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영국, 작품(Work), 1992, 97×131 cm. [ 사진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제공]

서울시립미술관은 유영국의 후기 작업을 ‘심상 추상’으로 해석한다. 1980년 이후 그의 화면은 초기의 강렬한 기하학적 긴장감에서 점차 평온과 절제의 세계로 이동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산이 아니라,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된 내면의 산에 가까워진다. 이는 단순한 풍경의 재현을 넘어, 인간 내면의 구조와 리듬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RM 소장품과 젊은 세대의 관심


이번 전시에는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한 주황색 산 작품도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RM의 소장품 공개는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내며, 유영국의 작품 세계가 동시대 감각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방송인 피터 빈트가 오디오 가이드에 참여해 관람객에게 새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프리즈×서울아트위크 기간에는 서울디자인재단과 협업해 ‘서울라이트 DDP’ 프로젝트를 진행, 유영국의 색채 세계를 DDP 외벽 미디어 프로젝션으로 구현할 예정이다.

유영국, 산-Red, 1994, 캔버스에 유채, 260×200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산-Red, 1994, 캔버스에 유채, 260×200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을 공부했고, 해방과 전쟁 이후에는 생계를 위해 어선을 타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약 10년간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 평생 약 800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는 생전에 작품 판매보다 작업 자체에 몰두했던 작가였기에 시장에 나온 작품 수가 많지 않다. 최근 국내외 주요 컬렉터와 미술관들의 관심 속에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유영국, 작품(Work), 1999, 캔버스에 유채, 105×10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작품(Work), 1999, 캔버스에 유채, 105×105cm.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전시는 사전 예약(yeyak.seoul.go.kr) 및 현장 방문을 통해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관람객을 위한 100여 종의 아트 굿즈와 작가의 고향 울진에서 영감을 받은 특별 음료를 선보이는 팝업 카페도 운영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술이 창작의 개념을 흔드는 오늘날, 인간의 직관과 회화 행위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전시”라고 말했다.

 

이번 회고전은 단순히 과거를 되짚는 자리가 아니라, 유영국의 산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동시대 감각으로 확장된 추상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다.
 

관람객은 붉은 산, 푸른 산, 보라빛 산이 이어지는 공간 속에서, 한 화가가 평생 반복해온 색과 리듬의 세계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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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작가#서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