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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가의 그림과 사람 이야기 1] 보람찬 삶, 아름다운 죽음

이승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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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삶의 끝에서 남긴 말
시인 김지하는 그의 시 '어름산이'에서 "죽음은 좋은 것, 어차피 한번 뿐일테니까"라 역설적으로 절규하였다지만 좋든 싫든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기어이 한 번은 찾아오고야 만다.
 
자연의 힘으로는 다시 만들 수 없다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보람찬 하루 끝에 행복한 잠이 오듯 보람있게 쓰는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는 말로 사상가이며 수학자,해부학자, 과학자,예술가로서의 67년의 삶을 마감한다. 그의 "검정 방울새"라는 시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Self Portrait, c.1505 - Leonardo da Vinci - WikiArt.org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 ~ 1519)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 온 어미 방울새는 어미와 먹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야할 새끼 방울새가 없어졌슴을 알고 사방으로 찾아다니다가 지나가던 농부에게 수소문을 하였다. 그 농부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잡혀서 마을 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마을 쪽으로 날아간 날아 간 어미 방울새는 새장에 갇혀 있는 새끼 방울새를 발견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시 날아가더니 얼마 후 돌아와 새장 속의 새끼 방울새에게 다시 날아가더니 물고 온 독초毒草를 먹이고, 죽어가는 새끼 방울새에게 눈물을 흘리며 독백한다.

"얘야,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한 것이란다." 

이는 자유와 생명의 고귀함을 같은 위치에 놓고 쓴 글이다. 그는 생명을 창조할 힘이 없는 사람은 생명을 파괴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생명을 가질 자격이 없다며 평생을 채식가菜食家로 살았다. 이렇듯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을 대변하는 검정 방울새 사상들이 모여 칼사루를 쥔 지주 계급이나 권위의 상징인 승려 계급이 지배했던 중세의 암흑을 이울게 하고 시민 계급을 형성시켰으며,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는 문예부흥(르네상스) 사상이 자리하게 되었다. 의무만이 강요되었던 세월을 지나 지켜야할 의무와 누려야할 권리 모두를 되찾아, 잃었던 인간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삶을 고귀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 삶의 마지막은 보람차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 산타아냐는 "신은 세익스피어를 세상에 내어 보내서 자연을 다시 창조했노라"고 말했다지만 이 르네상스 시기의 두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제로야말로 손길이 닿는 것마다 다시 숨결을 불어넣은 신의 대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는 각각 그 삶의 방식에 따라, 혹은 수명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Michelangelo Buonarroti Biography and Artwork
미켈란젤로 (1475 ~ 1564)

현대의 피카소와 브락크만큼이나 삶과 운명에 대한 차이가 크다.
즉, 같은 "길"을 예로 하여도 피카소는 "있는 길을 다 가보고 싶다."고 (다 빈치) 했는데, 브락크는 "길을 가되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보고 싶다."(미켈란제로)고 했으니 같은 시대 입체파의 두 거장마저 인생관이 달랐다.
 
모든 학문의 천재이며, 화가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훌륭한 인문주의자 임을 증명해보인 다 빈치와 역시 단테의 신곡을 모두 암송하면서도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2세로 하여금 미켈란제로의 몸에는 피가 아니라 페인트가 흐른다는 말을 들을만큼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의 삶의 지독한 예술가 미켈란제로는 그 유언도 다르다.

다 빈치는 분명 천재 이상이었으나 자신의 천재를 몰라보고 홀대한 사람들이 차라리 원망스러웠고 자인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이상향의 파편만 무수히 남긴 채 " 나는 단 한가지도 이룬 것이 없다."라는 마지막 말을 했다. 유언이었다.

반면 그보다 23살이 어렸던 미켈란제로는 절대로 타협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천재를 오직 끝없는 애정으로 가꾸어 나갔다. 4년동안이나 문을 걸어 잠그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 고개가 위로 비틀어져 책을 읽어도 고개를 위로 비틀고 읽는 것이 더 편하였다고 하니 그 천재에 무서운 집념이 더해졌다.

천장화에 그려진 사도들의 옷에 금빛 장식이 없슴을 나무라는 교황에게 " 교황폐하,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정직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을 뿐 금은 없었습니다. 폐하는 인간의 영혼이나 걱정하시고 몸뚱아리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 미켈란제로.
 
당시 교황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왕중왕이다. 그런데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죽음을 맞이하고 미켈란제로에게 고백한다. "내가 다음에도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면 교황 따위는 절대 하지 않겠다. 너처럼 화가가 되어 신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전해진다.

미켈란제로의 유언은 너무 간단하지만 당당하다 못해 완벽하다.

"나의 영혼은 신에게 나의 육체는 땅에 나의 재산은 친척에게"였다. 깔끔했다.

평생을 아버지만 존경하고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아버지께 금전적인 편지를 한 것을 보면 "지난 6개월동안 교황청에서는 단 한 푼의 돈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나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하여~~."
 
이승우 화가, 미술평론가
이승우 화가

이승우 화가는 고등학교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왔으며, 서울, 전주, 군산, 고흥, 중국 청도 등지에서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저서로는 『미술을 찾아서』, 『현대미술의 감상과 이해』, 『아동미술』, 『색채학』 등이 있다. 회화와 이론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독창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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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화가#이승우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