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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재미를 사는 재미 - 신삼숙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재미를 사는 재미

 

신삼숙

 

    이집트에서 물건을 사면서 흥정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비싸게 샀든지 덜 주고 샀든지 간에 흥정은 긴장감을 높이며 스릴을 맛보게 했다. 칸 엔칼릴리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가면서 들리는 호객 행위가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솔직히 말해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장에 가서 보던 풍경이 되살아났다. 대형마트의 정찰제나 키오스크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경은 낯설지 않았으며 정겨움과 향수가 있었다. 돈만 오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삶이 보였다. 

이집트 칼 엔칼릴리 시장

    재미의 시대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지하철에서 보면 사람들 손에는 거의 핸드폰이 들려있다. 각자 보는 게 다르겠지만 핸드폰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버린 게 틀림없어 보인다. 

 

    나도 배우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 여기저기 문화센터를 찾아다녔다. 많은 곳을 거쳤지만 머무른 곳은 글쓰기 교실이었다. 결국 내가 글을 계속 쓰는 건 재미가 있어서였다. '글쓰기 덕분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재미가 소비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글을 잘 쓰고 싶어 모르는 지식 호기심을 채우려 책을 사서 보고 기쁨을 얻는다. 아니면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영화 감상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감을 얻을 적이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어 후회하기도 한다. 재미란 이름으로 지갑을 비우고 있다.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가 SF드라마 <인터스텔라>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는 경험을 했다. 우주 탐사의 경이로움에 흥분하고 가족애에 감동하며 진정한 희생과 희망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나간 돈이 아깝지 않았다. 반면에 가끔은 기사 제목에 홀려 실망할 때가 있다. 잔뜩 기대하며 클릭했는데 내용은 빈 껍데기다. 특히 유투버가 심한데 알면서도 기대감에 또 빠져 손가락이 저절로 가고 있다. 뭔가 특별한 듯해 놓치면 안 된다고 암시를 받는다. 마침내 그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외로우면 말하는 로봇을 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던 나는 편리함도 좋지만, 기계와 상대하는 게 어색하고 왠지 허전하다. 클릭 한 번으로 모두 해결되니 신기하면서도 가슴에는 구멍이 뚫린다. 2030세대에서 가장 핫한 소비 트랜드로 자리 잡은 게 일명 '가잼비'라 한다. 가잼비란 가격 대비 재미를 뜻한다. 

  

    사실 나는 물건 흥정을 잘 하지 못해 싸게 사지는 못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사람을 상대로 말을 걸고, 표정을 읽고, 마음을 밀고 당기는 데서 잊고 있던 추억이 되살아났지 싶다. 

    

     한때는 우리나라도 흥정의 나라였다. 나는 동네에 마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남대문시장을 즐겨 다녔다. 상인들과 말씨름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는 해도 거래를 잘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착한 가격에 사면 발걸음이 가벼웠다. 가끔은 고른 후에 값이 맞지 않으면 다음에 오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쇼를 했다. 

    

   어쩌면 높아진 나라의 위상을 업고 그들이 주는 환대를 누리며 우쭐거렸을 수도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엄지척을 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서 어깨가 펴지며 당당해지는 순간이다. 1960년대 우유와 옥수수빵을 받으려 줄을 서던 시절은 갔다. 희멀건 얼굴의 서양인을 우러러보며 작아지는 나도 이제는 없다. 대신에 자랑스런 한국인이 있다. 변화가 나를 바꾸어주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 상인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그들을 상대하는 게 버겁기는 해도 오랜만에 기억을 살려내는 물건 사기는 맛이 붙었다. 

 

     나는 신중히 골라서 이것저것 신이 나서 선물을 샀지만, 내 취향대로 선택인지 식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공항에서 산 초콜릿을 더 좋아했다. 작은아들은 주섬주섬 내놓는 물건에 "많이도 사셨네"하며 핀잔 비슷한 말을 했다. 

    

    남들의 쇼핑에 휩쓸려서 사긴 했어도, 사는 재미로 재미를 샀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를 사는 재미 _ 신삼숙 수필가

[심향 단상]

  

    우리가 즐거움을 느낄 때는 여러 경우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쓸 때 우리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가보고 싶은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하고 싶은 운동을 할 때 등 돈을 들이는 것보다 기쁨이 클 때 우리는 만족해 하고 또 하고 싶어합니다. 

 

    화자는 여행을 가서 즐겁게 쇼핑하며 그곳의 상인들과 흥정하고 구매하며 과거의 추억도 떠올랐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져서 우대해주는 느낌도 받으니 더 기분 좋게 쇼핑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에서는 흥정할 수 있는 곳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몇 군데 남은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길에서 파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물건을 사면 덤으로 조금 더 얹어주시곤 하십니다. 상점은 거의 다 정찰제로 가격이 붙어있어서 깎아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고, 그런 곳에서는 대부분 유행이 지나면 할인 기간을 정해 놓고 물건을 할인해서 팔고 있지요. 사고파는 사람 간의 대화가 줄어서 삭막하기도 합니다. 

 

    특히 음식을 주문할 때 '키오스크'를 사용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길에서 물건을 바닥에 놓고 파시는 분들은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면 임대료를 내야 하기에 노상에 놓고 파시는데, 그분들은 거의 오후에 나와서 나물을 다듬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판매하고 계십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나 추운 겨울에는 길에서 오래 머무는 일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날은 물건이 빨리 팔려서 일찍 댁으로 들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옛날에는 어머니께서 직접 고구마 줄기나 도라지, 더덕 껍질 벗기기, 쪽파 다듬기 등을 하셨는데, 요즘 사람들은 껍질 벗겨야 하는 것이나 대량으로 사는 일이 거의 없어서 길에서 껍질을 까놓고 파는 분께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기도 합니다. 저도 양파 빼고는 껍질 벗기는 일을 하기가 어려워서 껍질 벗겨 놓은 것을 지나다니다 사곤 합니다. 그분들이 파시는 품목으로는 껍질 깐 콩과 더덕 깐 것, 집에서 키우신 상추나 쪽파 껍질 깐 것들도 있어서 바로 해 먹기 편하여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곤 합니다. 

  

    '가잼비'의 대표적 장소가 있습니다. 이제 식료품을 제외한 많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고 있는 '다이소'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장소가 됐습니다. 일본의 '백엔샵'이 유행하면서 생긴 '다이소'에는 박리다매로 많은 종류의 물건을 팔고 있어서, 사람들의 바구니에는 거의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주로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가기도 편하고, 물품 금액이 저렴하니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지요. 들인 돈에 비해 물건 수나 부피가 크니 만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오빠가 학교에서 옥수수빵을 받아서 집에 가져와 저를 주려고 했는데, 오는 길에 너무 먹고 싶어서 반쯤 먹고 가져다 준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동생을 잊지 않고 남겨서 주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때는 군것질 거리도 없었고 학교에서 무료로 배급해주던 빵이었는데 그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제가 고학년이 되어서는 그런 일은 없어졌고 학생들이 많아서 오전 오후로, 2부제 수업을 했습니다. 한 반에 아이들이 60~70명씩 되었는데  베이비붐세대에 한 집에 아이들은 보통 다섯 명은 된 것 같습니다. 저희 세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분도 많으셔서 이모와 고모, 삼촌과 외삼촌, 작은 아버지와 큰 아버지, 사촌에 육촌까지 명절마다 모여 세배 드리러 다니며 집집마다 방문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다 옛날 이야기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혼은 늦어졌고 비혼도 많아서 아이들은 더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신생아 탄생률이 0.7%라니, 결혼해서 1명 낳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나 밖에서 만나는 아기를 보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합니다. 아기들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며 웃어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헤어질 때는 안녕! 인사를 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합니다. 아기에게 좋은 관계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의 삶이 재미있게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사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재미있을만한 일을 하기 위한 약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노력도 해야겠지요. 

 

    성실히 사는 가운데 잠시라도 자신을 위한 재미있는 시간도 보내며 살아가시길 바라봅니다. 

    인생은 '소풍'이라고 하니까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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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코리안드림문학 편집위원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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