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9] 김정화의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9] 김정화의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김정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는

이즈하라 가네이시성의 외진 곳에

버려진 고아처럼

쓸쓸하게 서 있었다

세월의 때가 까맣게 내려앉은

비석 앞에 누군가 두고 간

꽃다발 넷이

오히려 처연해서 슬픈 것을,

봉축이라니?

대한제국의 황녀를

납치하듯 데려다가

정략 혼인시킨 것을,

그리하여 마침내

정신마저 빼앗긴 덕혜옹주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한다니

치미는 분노를 삭이느라

우러른 대마도의 하늘엔

검은 구름만 자욱한데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삼나무 우듬지를 휘어

누르며 날아갔다.

 

―『꽃은 피는 순간을 안다』(한국문학신문, 2025)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

 [해설]

 

  시인은 대마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라는 한글 팻말의 화살표를 따라가 보면 시에 나와 있는 그대로 이즈하라(厳原) 가네이시성(金石城)의 외진 곳에 버려진 고아처럼 쓸쓸하게 서 있는 비를 하나 만나게 된다. 고종이 59세에 궁녀인 양씨와의 사이에 낳은 고명딸 덕혜옹주(1912~1989)는 일본인들의 눈에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이복동생이다. 일본은 영친왕이 어릴 때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식 교육을 받게 하고 일본 황족 출신인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시킨 것과 같은 방식으로 덕혜옹주도 일본으로 보내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작전을 짰다.

 

  일본은 대마도의 제15대 번주 소 요시요리의 손자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19315월 동경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한 뒤 11월에 부부가 대마도를 방문케 하였다. 당시 대마도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옹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일본은 서울(경성)의 일본인 자녀 학교인 히노데 소학교(日出小学校)에 재학 중인 덕혜옹주를 1925,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강제출국식으로 일본에 유학을 보냈다. 열일곱 살이던 1929년 어머니 귀인 양씨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심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 옹주는 등교를 거부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1930년 조현병 진단을 받는다. 이처럼 심약한 상태에서 다음 해 1931년 소 다케유키와 결혼했으니 그 결혼 생활이 행복했을까? 그래도 덕혜옹주는 결혼 다음 해인 1932년 딸 마사에를 낳는다. 1946년 가을 덕혜옹주의 병세가 악화되어 도쿄 도립 마쓰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시 딸 마사에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마사에는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1955년 스물두 살에 시인이었던 스즈키 노보루와 결혼하였다. 다음 해 19568월 당시 신혼의 마사에는 죽음을 알리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었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고야 마사에의 유품이 산중에서 버섯을 따던 인근 산장 인부에게 발견되었지만 시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1931년에 세워진 기념비는 덕혜옹주가 1955년에 이혼을 당하자 철거되었다가 한참 뒤에 다시 세워진다. 덕혜옹주는 1962년 한국에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와 담장 사이인 수강재에서 지내다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가 60년이나 조현병 환자로 살아가게 한 일본! 시인은 치미는 분노를 삭이느라/ 우러른 대마도의 하늘엔/ 검은 구름만 자욱한데”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삼나무 우듬지를 휘어/ 누르며 날아갔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덕혜옹주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에 있다. 일본이 이 땅의 수많은 사람에게 행한 인권 유린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김정화 시인]

 

  《한국국보문학》으로 등단. 시집 『눈 오는 날엔 눈물이 난다』『꽃잎 도장』, 르포집 『안동의 아지매들』, 기행수필집 『바람길』을 냈다. 경북작가상, 경북펜문학상, 경북예술상, 국보문학 작품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안동지부 회장, 국제펜 경북위원회 자문위원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