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55] 윤수천의 "어머니ㆍ6 " 외 4편
어머니ㆍ6 외 4편
윤수천
아버지는 신경쇠약으로 집에서만 지내셨다
이름난 학교를 나오시고도 취직을 안 하셨다
아니, 못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아낙군수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아낙군수가 뭔지 몰랐지만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충분히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ㆍ9
어머니의 내의는 하나도 성한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빨래를 햇볕 좋은 밖에 널지 못하고
늘 방 안 한쪽에 널었다
어쩌다가 손님이라도 오면
빨래부터 감추느라 어머니는 늘 얼굴이 홍당무였다.
어머니ㆍ11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이긴 하지만 잘 다투셨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시면
어머니는 수세미로 솥단지를 박박 문지르셨고
아버지는 입고 계신 런닝구를 발기발기 찢으셨다
나는 지금도 솥단지를 보면 웃음이 나고
티셔츠를 입을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머니ㆍ14
내 두 살 때라고 한다 설 명절 다음날인 저녁에
어머니는 때때옷 입은 나를 업고 이웃집에 마실 가셨다
여러 어머니들이랑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내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더니
내 때 봐! 하더란다 내 다리를 본 어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이고 애 때는 안 씻기고
때때옷만 입혔다며 박장대소를 하더란다
내가 왜 그런 못난 짓을 했는지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어머니ㆍ17
어머니는 내가 우체국 공무원이 됐을 때 참 좋아하셨다
신경쇠약 증세로 평생 집안에서만 지내신 부친에
한이 맺힌 응어리를 나로 하여 얼마쯤이나마 푸셨다
어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체국 창구에 오셔서
먼빛으로나마 자식의 근무하는 모습을 훔쳐보곤 하셨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고요아침, 2025)

[해설]
윤수천 시인의 어머니와 아버지
수원에서 행해진 문학 행사 때 몇 번 뵌 적이 있는 윤수천 선생께서 나의 창작활동과 근황을 잘 파악하고 계셨는지 문인 소개의 글을 연재하면서 12번째로 나를 선정, 어제 몇 군데 채팅 단톡방에 올리면서 연락을 해주셨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윤수천 선생님의 어머니 연작시집 『어머니, 나의 어머니』를 받고 다 읽어본 뒤 ‘동시도 아니고 회고담도 아니고 애매하군’ 하면서 서가에 꽂아놓았을 따름인데. 그런데 이런 관심을 보여주시니 황감하여 시집을 이번에는 정독하였다. 제목이 같고 숫자만 1부터 50까지 붙여져 있는 50편 연작시 중에 5편을 타이핑한 뒤 언급해볼까 한다.
6번 시에는 무능한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가 나온다. “한때 기름 장사를 하셨다/ 방앗간에서 참기름을 짜가지고 가가호호 방문 판매하셨다”(「어머니ㆍ23」)에 잘 나와 있듯 집에 늘 죽치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이런 일도 했고, 바느질 솜씨와 음식 솜씨가 뛰어났다. “손바닥만 한 땅도 가만두지 않으셨다/ 상추 파 호박 고추 등 뭐라도 심고 가꾸셨다”(「어머니ㆍ4」)란 구절이 말해주듯 어머니는 부지런한 분이었다. ‘아낙군수’는 사전에 나오는데, 늘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히키코모리나 은둔형 외톨이랑 같은 뜻이다.
가장이 하릴없이 빈둥거리니 어머니는 속이 많이 탔을 것이다. 러닝에 구멍이 날 정도로 입으면서 알뜰히 사는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는 역사소설을 읽으며 하루해를 보냈다. 화난 어머니가 수세미로 솥단지를 박박 문지르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아버지는 왜 자신이 입던 멀쩡한 러닝을 발기발기 찢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아마도 매사에 근검절약하는 어머니를 속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잘 토라지는 아이 같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외아들 수천이가 군대를 잘 마치고 우체국 직원이 되었을 때 매일 우체국 창구 앞에 가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14번 시를 인용한 이유는 “설 명절 다음날인 저녁에”라는 구절 때문이다. 바로 오늘이다. 내 어머니는 2007년 설날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5학년 때인가 김천경찰서에 사표를 내고는 그 이후 직업을 영영 가져보지 않았다. 어머니가 30년 동안 문방구점을 하면서 ‘쎄가 빠지게’ 고생한 것은 아낙군수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윤수천은 아기 때부터 개구쟁이였나 보다. 느닷없이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려 “내 때 봐!”라고 얘기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다니! 어머니는 그런 짓궂은 아들이 훗날 글을 써서 상금도 많이 받고 원고료, 인세도 많이 받아서 흐뭇해하셨을 것이다.
[윤수천 시인]
1942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윤수천 작가는 국학대학 국문학과 2년을 수료했다. 1974년 소년중앙 문학상에 동화 「산마을 아이」가 우수작으로 당선되고 197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항아리」가 당선되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 34년간의 공무원직을 명예 퇴직한 이후에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국방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자문위원, 수원문인협회 고문을 맡고 있으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꾸준히 했다.
시집 『쓸쓸할수록 화려하게』『빈 주머니는 따뜻하다』를 비롯해 ‘꺼벙이 억수 시리즈’ 등 80여 권이 있다. 특히 『꺼벙이 억수』는 2007년 한국의 창작동화 50선,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추천도서에 선정되는 등 학부모와 어린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동화와 동시 여러 편이 교과서에 실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으며 몇몇 작품은 중국, 일본 등 외국에도 번역 출판되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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