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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53】 김나비의 "디스토피아"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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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김나비

 

심장이 팔딱이고 갈증을 느끼나요

슬픔이 파도치고 그리움에 뒤척이나요

착한 건 약한 거래요

더 약해지면 안 돼요

 

내반족內反足도 백 살 생일에 탭댄스를 출 수 있죠

증손자 결혼식 땐 시 낭송도 할 수 있어요

의식을 이식받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죠

 

복제된 두뇌를 어떤 몸에 넣을까요

약한 건 죄악이죠 죄에서 벗어나요

여기는 디스토피아

사이보그 천국이죠

 

- 초월 동인《묵묵히 질량을 쓴다》 (2026.문학저널)

디스토피아 /김나비이미지: 강영임기자
디스토피아 /김나비[이미지: 강영임기자]

우주선에서는 우주를 오가며 탐사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다양한 실험들도 이루어진다.예를 들면 무중력에서 라떼 마시기같은 실험이다.실험자는 한 손에 커피든 파우치를,다른 손에는 우유든 파우치를 들고 두 개를 적당히 눌러 동그란 베이지색이 되면 마시는 것이 우주의 카페라떼가 된다.

 

세상은 너무 빨리 흘러간다.1년 전의 이론이 오늘 달라져 있을 만큼 빠르다.과학과 인공지능의 발달은 현대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인공지능,AI는 단순한 데이터 처리를 넘어서 인간의 사고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이 시는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이미 도착해버린 현재를 조용히 점검하는 에세이처럼 읽힌다. 심장이 팔딱이고 갈증을 느끼나요라는 질문은 생존의 최소 조건을 확인하는 문장이다.살아 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만 이내 슬픔과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이 감정들은 개인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덮쳐오는 재난처럼 묘사된다.감정은 더 이상 보호 받고 존중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통제되어야 할 관리의 대상이다.

 

둘째 수에서 인간은 점점 존재가 아니라 기능으로 이동한다.신체의 결함도 부품을 갈면 백 살 생일에도 탭댄스를 출 수 있으며,증손자의 결혼식에서도 시 낭송을 할 수 있다고 한다.이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역할의 연장이다.인간은 끝까지 쓸모 있어야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을 이식받으면/무엇이든 될 수 있죠소름 돋는 문장이다.이는 더 이상 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사람의 정체성은 고유한 영역인데 이러한 의식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다고 말한다.

 

복제된 두뇌를 어떤 몸에 넣을까요/약한 건 죄악이죠 죄에서 벗어나요/여기는 디스토피아/사이보그 천국이죠셋째 수는 기술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윤리적인 물음이다.몸과 정신이 분리된 세계에서 화자는 인간의 영역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시 속에 제시되어 있다.약함은 죄악이라고 한다.사이보그 천국인 디스토피아는 실패한 지옥이 아니라 성공한 천국이다.모두가 가능하다. 고장 난 것은 수리 되거나 교체되며 약함은 정리된다.그러나 이곳에는 사람이 없다.사람 중심인 유토피아와 달리 디스토피아는 억압된 통제와 비인간적 질서 아래 개인의 자유와 인간성이 억압된 암울한 사회를 말한다.

 

「디스토피아」는 서술보다 질문으로 시작하며 독자를 공범으로 만드는 구조를 가져온다.감정 없는 어휘와 문장이 만드는 폭력,인간은 없고 끊임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만 제시한다.이는 의도된 삭제가 가져오는 미학이다.인간의 역사,기억,관계가 사라져 인간은 존중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펙(specification)으로만 환원 시킨다.

 

소금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97%의 염화나트륨이 아니라 소금에 섞여 있는 3%의 불순물이라고 한다.바다의 풍미를 담은 약간의 마그네슘과 짠맛을 둥글게 해주는 약간의 칼슘 쌉싸름한 맛을 내는 칼륨과 바다 냄새가 어우러져 소금의 맛을 낸다.

 

과학의 발달로 편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맞는 요즘이지만 때로는 실수하고 화도 내고 울고 웃는 불순물 같은 모습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강영임 시인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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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시인#디스토피아#강영임의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