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9] 김영숙의 "요술구름" 외 1편
요술 구름 외 1편
김영숙
구름이 그림 그려요
엄마 얼굴 아빠 얼굴
하늘나라 엄마 아빠
봉숭아꽃 과꽃 보는지
어쩌나 바람이 지웠네
난 몰라 눈물 흘러요
꽃의 사연
영안실 앞 줄줄이
한 자세로 서 있는 꽃
지게형 목발에
산山 모양으로 꽂혀 있고
하얀 벽 배경 삼아
속울음 꾹 삼킨다
활짝 핀 국화 죽어서도 사는 꽃
한 송이 올려놓은 꽃마다 말이 없고
앞앞이 못다 한 말들 마음에 새긴다
영정 앞 꽃 속에 속정 깊은 눈맞춤만
날 보고 웃음 지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향로에 눈물이 뚝뚝
재가 되어 떨어진다
—『해바라기의 기도』(도서출판 고요아침, 2024)

[해설]
아이들도 죽음을 느껴야 하는 이유
동시이며 시조이니 동시조이다. 그런데 두 편 다 내용이 슬프다. 「요술 구름」의 화자인 아이는 고아인데, 부모님 두 분이 왜 다 하늘나라에 계신지는 작품에 나와 있지 않다. 구름이 엄마 얼굴도 그리고 아빠 얼굴도 그린다. 내가 지금 봉숭아꽃 과꽃을 보고 있는 것을 구름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바람이 구름을 지워버렸다. 구름이 없는 하늘이 되었고, 비로소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꽃의 사연」은 영안실 앞에 국화로 만들어진 근조화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 어린이 상주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첫째 수와 둘째 수는 꽃이 의인화되어 있다. 활짝 핀 국화를 “죽어서도 사는 꽃”이라고 표현한 것이 놀랍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한다. “한 송이 올려놓은 꽃마다 말이 없고/ 앞앞이 못다 한 말들 마음에 새긴다”는 아이들이 이해할까 싶은, 고도로 세련된 표현이다.
세 번째 수는 영정 앞에 나란히 놓여 있는 꽃이 나(화자, 아이)를 보고 눈을 맞추고 나서 괜찮냐고 “날 보고 웃음 지으며 안부를 묻고 있다”. 그러자 향로에 눈물이 뚝뚝, 재가 되어 떨어진다. 장례식장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가장 크게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가족이다. 특히 자식이다. 자식이 제일 많이 가슴 아프지,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혈육의 아픔을 느낄 수는 없다.
김영숙 시인은 동시조집에 왜 이 2편을 넣었을까? 아이들도 그 언젠가 이 아이의 경우처럼 부모와 사별할 날이 옴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모든 생명체는 때가 되면 생명현상이 끝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다른 동시조는 다 재미있고 밝은데 이 2편이 아픈 내용이었고, 그래서 눈에 띄어 다뤄보았다. 붓다는 2500년 전에 “생자필멸이니 정근(精勤)ㆍ정진(精進)하라”고 하였고, 예수는 2000년 전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김영숙 시인]
2006년 《시조시학》으로 등단. 국민훈장목련장, 이효석백일장 최우수상, 여성백일장 수필 장원, 신사임당백일장 시 장원, 열린시학상, 사임당문학상, 상상탐구작가상, 시에그린한국동시조문학상 수상.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열린시학회, 계간문예, 광진문협 이사. 동화구연 지도강사, 독서 시 치료사, 윌다잉코칭 전문봉사단원. 시집 『해는 어디고 비친다』, 시조집 『하늘 그물』, 동시조집 『해바라기의 기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