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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8] 박종구의 "정" 외 2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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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종구

 

젖 먹일 시간 놓쳐

새끼가 울고 있나

 

젖이 돌던 아낙네가

어서 가손짓하며

 

올무에 뱅뱅뱅 꼬인

고라니를 풀어주네

 

왜 하필

 

장대비 쏟아지는 깜깜한 자정 무렵

친구의 부음 듣고 바쁘게 달리다가

갑자기 산모퉁이서 마주친 새끼 고라니

 

절룩이며 울부짖는 고라니를 뒤로 한 채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도착한 오지마을

상주들 울부짖음에 고라니가 겹치네

 

고라니

 

새끼가 눈에 밟혀

신호를 위반했나

 

터진 배를 움켜쥔 뒤

신호등을 노려보는

 

고라니 슬픈 눈동자,

새끼가 걸려 있네

 

—『시간의 촉감』(목언예원, 2023) 

고라니 _ 박종구 시인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너무나도 불쌍한 고라니 가족

 

  사슴과에 속한 고라니는 얼굴을 보면 착하고 순하게 생겼다. 사슴보다 약간 왜소하고 약하게 생겼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지만 대한민국에 전 세계 고라니의 60%가 서식해 농부를 힘들게 하여 수렵대상 종이다. 농부들은 고라니를 퇴치하려고 올무를 놓는다. 새끼 한 마리가 올무에 걸려 울고 있다.

 

  그것을 발견한 이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아낙이었다. 그 새끼를 딱하게 여겨 풀어주었다. 어느 날은 화자가 친구의 부음을 듣고 급하게 밤의 시골길을 달리게 되었다. 마침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산모퉁이서 마주친 새끼 고라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는지 절룩이며 울부짖고 있다. 그 고라니를 어떻게 할 시간이 없어 내버려두고 상갓집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는 유족이 울부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새끼는 어느 산골짜기에서 아파하면서 죽어가리라.
 

  세 번째 시조는 고라니 로드킬이다. 고라니가 터진 배를 움켜쥐고 신호등을 노려보고 있다. 상상을 해보면 이렇다. 고라니가 눈에 밟혀 빨리 가려다가 신호를 위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미 고라니는 새끼가 눈에 밟혀 죽고 싶지 않지만 이제 죽을 시간이 거의 임박한 듯하다. 졸지에 어미를 잃은 새끼 고라니, 불쌍해서 어쩌나.

 

  고라니는 옥수수, 고구마, 들깨, 콩 등 밭작물을 짓밟아 수확량을 크게 줄이므로 농부들은 아주 싫어한다. 아아 먹을 걸 좀 나눠주며 공존하면 안 되는 것일까. 고라니는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습성이 있어 야간이나 새벽, 산간도로에서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아무쪼록 불쌍한 고라니 가족을 미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밤에 운전할 때 각별히 주의했으면 좋겠다.

 

  [박종구 시조시인]

 

  충북 청주 출생. 2012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질경이의 노래』『벙어리 새』『시간의 촉감』.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한국시조시인협회, 대구시조협회, 경북문인협회, 청도문인협회 회원. ‘한결동인.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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