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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9] 김임순의 "심부름", "선풍기"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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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

 

김임순

 

창녕 김약국 한약방집 넷째 딸은

똑소리 난다카며 별명은 똥그래미

장날엔 외상 약값 받으러 다 제끼고 보냈지요

 

아버지 일러주신 택호들을 되뇌었다

어멀리 생꼴땍이집 도랑 건너 꼼보아재집

개 조심, 살짝 밀고 계심껴 김약국집에서 왔는데예

 

대목 밑 부산한 날 온 동네를 돌았지요

아부지가예 대목이라꼬 밀린 약값 달라캐예

받아 온 기억은 없다 현찰 부재 그 시절

심부름 _김임순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선풍기

 

주야장천 돌아서 제 생을 다할 결심

부채를 날려버린 네 당당한 그 위력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 바람을 부풀린다

 

쪽방촌 할아버지도 삼복더위 효자 같은

사람의 숨통을 찜통에서 건져내는

원터치 심폐소생술 피돌기에 이상 없다

 

―『숲, 기억 만 리』(책만드는집, 2025)

선풍기_김임순[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해학이 있는 시조

 

  시조 「심부름」의 내용에 허구가 가미된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경남 창녕에 있는 김약국 한약방집의 넷째 딸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가 보다. 장날에 외상 약값을 받아 오라고 아버지가 명하면 15세 소녀는 택호를 잘 외어 가정방문(?)을 하는데,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부지가예 대목이라꼬 밀린 약값 달라캐예소녀의 간청에도 돈을 준 집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집에 현찰이 없었던가 보았다. 심부름을 갔다가 돈을 거의 못 받아 낙심천만인데, 아버지가 딸의 수치심과 자존심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그 밑의 시조는 선풍기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선풍기가 낡을 대로 낡았지만 성능은 여전히 좋다. 그러므로 고장이 날 때까진 계속해서 쓰겠다는 짧은 이야기다. 이 시조는 선풍기의 의인화도 재미있지만 쪽방촌 할아버지와 낡은 선풍기를 동일시한 것, 쪽방촌 할아버지에겐 선풍기가 효자라는 표현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김임순 시조의 특징은 시조의 품격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해학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골계미나 해학성은 우리 문학의 전통 중 하나였는데 현대에 와서는 많이 망실되고 말아 안타깝다. 매일 끔찍한 사건ㆍ사고가 터져 세상에 온통 잿빛이 드리워 있는데 시인이 건네는 농담 한마디는 우리들의 삶에 숨통을 틔워준다.

 

   [김임순 시인]

  

   경남 창녕 출생으로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졸업. 2013년 《부산시조》 신인상과 《시와소금》으로 등단. 시조집 『경전에 이르는 길』『비어 있어도』『첼로를 품다』, 시선집 『그 침묵에 기대어』 등. 연암청장관문학상, 공무원문예대전 행정안전부장관상, 월간문학상, 부산문학상 우수상, 부산시조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국제시조시인협회, 부산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원.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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