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1】 궁합을 구걸하다
궁합을 구걸하다
김선호 
아무리 안 풀리기로 저렇게까지 망가지누
아우 소문 들은 놀부 배를 살살 앓더니만 부러뜨린 제비 다리 헝겊으로 동여매며 명년 봄 찾아오거라 박씨 물고 오너라 이듬해 물고 온 박씨 처마 끝에 심으면서 금은보화 벼락 꿈에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가 큰 봉변 당한 걸 아는 삼류시인 꼴 좀 보소 세상사 어찌 같은가 예외가 늘 있거늘 행여나 혹시나 하며 놀부 수법 가로채서 내림굿 작두를 타듯 신들린 양 날뛰는데, 찰떡을 머리에다 투구처럼 뒤집어쓰고 하늘에 떠다니는 시어 향해 손짓하며 제발 좀 붙어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기라 천지사방 널렸으니 어느 한 놈 걸릴 만한데 요리조리 맴돌면서 흘끔흘끔 간만 보니 아마도 부실한 속내 벌써 눈치를 챘는 기라 궁합 좀 어긋나도 살다 보면 맞춰지고 애 낳고 살림 불면 잉꼬부부 될 법도 한데 포르르 날아가면서 조롱하듯 던지는 말이
궁합이 억지로 맞나 만만의 콩떡이지

지금이야 기세가 수구러들었지만, 궁합을 중시하던 때가 있었다. 혼담이 오가면 먼저 남녀의 사주를 오행과 맞춰서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봤다. 둘이 아무리 애틋해도 궁합이 안 맞으면 혼인이 성사되지 않았다. 궁합 중 제일은 찰떡궁합이다. 찰떡처럼 착 달라붙어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금슬이 좋겠다는 기대감이 단어에 묻어 있다.
이근배 시인은, ‘시의 첫 줄은 신이 준다’는 폴 발레리의 견해를 시 창작법 9가지 중에서 첫 번째로 놓는다. 글감을 얻고 붓을 들었을 때 첫 줄을 얻기 위해서는 영감이 떠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이 어찌 그냥 술술 떠오르랴, 수많은 생각의 천착과 독서와 습작의 노력이 선행돼도 나올까 말까 하거늘!
수많은 시인이 울림 있는 시를 쓰기 위해 고뇌한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밤과 씨름한다. 과장된 억지 설정이지만, 삼류시인의 행각이 안쓰럽다. 남에게는 잘도 오는 시마(詩魔)를 영접하려고 찰떡을 머리에 뒤집어쓴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착 달라붙어 찰떡궁합처럼 잘 지내보자고 애원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잔꾀 부리다 패가망신한 놀부처럼 조롱감만 됐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라고, ‘시의 날’ 선언문은 시작한다.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소년> 지에 처음 발표된 날인 십일월 초하루를 한국시인협회와 한국현대시인협회는 ‘시의 날’로 정했다. 바로 내일, 올해로 39회를 맞는다. 고뇌하는 모든 시인에게 시마가 찾아오기를, 그리하여 명품시가 넘실대기를 응원한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