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5] 유현숙의 "밀롱가"
밀롱가
유현숙
결코 엉기지 않아
시스루 드레스는 두 박자 열정이지
목은 꼿꼿이 가슴은 활짝, 겨드랑이에 날개 돋지
은구슬 힐이 가는대로 빨간 페디큐어 발가락 리듬을 타지
낯선 어깨에 나비를 얹어도 좋아
젤라또 같은 꿈이란
밀도 높은 향미를 품었을 때 꿈답지
눈빛 by 눈빛, 스텝 by 스텝
닻을 올리고 순풍을 가르며
멈출 듯 멈출 수 없어, 내닫는 미궁의 카덴짜
바닥을 향한 몰입과
갈망의 불길에 휩싸이는 오, 관능의 여제여
스텝은 현란하고
뱀처럼 허리를 감은 선장은 해저를 향해 키를 잡지
당신이란 물속을 탐구하지
이 선상엔 규칙이 있을 뿐
오로지 땅고tango, 땅고만 있을 뿐
몸의 굴절율만 있을 뿐
음악이 끝나기까지 단 3분 그것이
내 연애의 전부야.
―『미루』 시동인지 제3집(건강신문사, 2025)

[해설]
춤을 배우면 좋으련만
춤추는 두 사람의 몸은 결코 엉기지 않고 겨드랑이엔 날개가 돋는다. 밀롱가(Milonga)는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는 장소를 의미한다. 탱고의 음악 장르(탱고, 발스, 밀롱가)를 나타내기도 한다. 알 파치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여인의 향기>는 탱고 장면만 기억난다. 장국영과 왕조위가 나온 <해피 투게더>에서도 두 남자가 탱고를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와 미국 영화 <Shall We Dance?>를 보고 탱고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유현숙 시인이 탱고를 출 줄 아는지,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이 시는 탱고의 매력을 모르고선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보니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춤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아주 오랜 조상 때부터 키워온 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2연까지는 탱고를 열정적으로 추는 남자와 여자를 생각하게 하는데 제3연부터는 사람이 몸으로 불을 일으키고 바다 깊이 탐험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암 수술 이후 춤을 배우면서 예전의 건강을 되찾는 분을 보았다. 춤은 몸을 유연하게 만들고, 자세를 바로잡게 하며, 유산소 운동을 하게 한다. 무용학과 대학원 수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무용대본 작성 과목이어서 실습은 아니었다) 공연장에서 가서 현대무용과 고전무용 구경도 많이 했는데 사람의 몸이 저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매번 놀라웠다. 중국의 역사책에 반도 쪽 사람들은 음주와 가무를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노래 歌 춤출 舞. 우리 조상은 대대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유전자가 어디로 갔으랴. K-pop이 전 세계를 휩쓸 수 있었던 것도 끼와 신명이 남달랐던 조상 덕분이다.
예전에는 ‘비밀 댄스홀’이란 게 있었다. 불법과 퇴폐의 온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스포츠 댄스’라고 하여 몸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키울 수 있다.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아야겠다. 유현숙 시인을 만나면 춤을 안내해 주시려나?
[유현숙 시인]
2001년 <동양일보>와 2003년 《문학ㆍ선》으로 등단. 시집 『몹시』『외치는 혀』『서해와 동침하다』 등을, e-book 『우짜꼬!』『고독한 여름』 등을 펴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제10회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