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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안의 세상보기] 알림은 울리지만 감동은 없다 — 카카오톡 단톡방의 역설

류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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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짜 소통을 생각할 때

 류안 코리아아트뉴스 발행인  

“생일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일명 ‘단톡방’에 울려 퍼지는 메시지들은 언제부턴가 감정이 아닌 의례가 되었다. 축하도, 애도도, 감사도, 모두 복사-붙여넣기처럼 반복된다. 단톡방은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소통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단톡방은 과연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더 멀어지게 하고 있는가.

단톡방은 더 이상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의무와 반응의 강요가 뒤섞인, 피로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알림은 울리지만, 감정은 없다


단톡방은 본래 연결을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피로의 상징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그 대부분은 읽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네~”, “좋아요~”, “확인했습니다” 같은 반응은 대화의 흐름을 끊고, 의미 없는 소음으로 남는다. 읽지 않은 메시지에 대한 죄책감, 읽고도 답하지 않으면 생기는 눈치. 우리는 단톡방에서 감정을 나누기보다 감정을 숨기고 있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 반응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고, 반응하지 않으면 무심하거나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걱정한다. 단톡방은 더 이상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적 의무와 반응의 강요가 뒤섞인, 피로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단톡방이 광고판이 된 순간


단톡방의 순기능은 정보 공유였다. 공지사항, 일정 조율, 의견 교환 등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유용한 도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단톡방은 광고판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마케팅, 부동산 투자, 유튜브 링크, 쇼핑몰 홍보 등 상업적 목적의 메시지가 범람하며, 단톡방은 ‘관계의 공간’이 아닌 ‘영업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홍보성 포스팅은 구성원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단톡방의 본래 목적을 흐리게 만든다. 단톡방은 더 이상 안전한 커뮤니티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침묵과 무언의 거절이 반복되는, 감정적 소외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자동화된 축하, 감정 없는 애도


누군가의 생일, 누군가의 퇴사, 누군가의 가족상. 단톡방은 늘 같은 말로 반응한다. “생일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이 담긴 말은 점점 사라지고, 자동화된 반응만 남는다. 감정은 텍스트 속에서 증발하고, 우리는 서로의 삶에 무관심한 채 ‘예의’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자동화된 감정 표현은 인간관계를 얕게 만들고, 오히려 감정적 단절을 초래한다. 우리는 서로의 기쁨과 슬픔에 진심으로 반응하기보다, 단톡방의 분위기에 맞춰 반응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감정의 과잉, 갈등의 시작


반대로, 특정 이슈에 대해 감정이 과잉 표출되면 갈등이 생긴다. 이모티콘 하나, 말투 하나, 반응 속도 하나가 오해를 낳고, 단톡방은 감정의 전쟁터가 된다. 텍스트 기반의 소통은 감정을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고, 그 틈을 타 오해는 커진다. 단톡방은 감정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시험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감정이 과잉되면 분위기는 급속히 무거워지고, 단톡방은 침묵과 긴장으로 가득 찬다. 결국 우리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단톡방은 점점 더 무의미한 공간이 되어간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단톡방을 나가고 싶어도, 우리는 쉽게 떠날 수 없다. 퇴장은 곧 관계의 단절로 여겨지고, ‘예의 없음’이라는 낙인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남아 있고, 계속 피로해진다. 단톡방은 관계를 유지하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에 얽매이게 하는 족쇄가 된다. 단톡방의 존재는 때로는 관계의 지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유지라는 명목 아래 감정적 소모를 강요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우리는 단톡방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만, 너무 적은 것을 나눈다. 진짜 소통은 알림 너머의 진심에서 시작된다. 

다시, 진짜 소통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단톡방에서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만, 너무 적은 것을 나눈다. 진짜 소통은 알림 너머의 진심에서 시작된다. 단톡방의 에티켓을 재정립하고, 감정의 자동화를 멈추고, 관계의 피로를 덜어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우리가 단톡방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피로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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