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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9] 손수여의 "암각화 2"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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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2

-고래의 항변

 

손수여

 

바다의 제왕 고래들이 다 모였다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가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도 건너왔다

 

고래는 몰려와 여기 살기 좋다고

아주 오랜 돌고래 떼 몇 마리가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세상 향해

무슨 말을 마구 쏟아낸다

잡지 말라, 자유롭게 살고 싶다

우리 터전을 막지 말라

비닐도 플라스틱도 버리지 말라

썩지도 소화도 안 되는 것 넣지 마

고래는 절규한다

바다 살려야 사람도 살 수 있다고

 

고립으로 치닫던 검붉은 액자 속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서

경계를 내려놓고 허구 세월을

반구대에서 지금도 시위 중이다

 

―『지금도 시위 중이다』(신아출판사, 2025)

 

  [해설

 

  고래를 살리자

 

  아주 태곳적에 절벽의 벽에다 고래잡이 그림을 그렸으니 참으로 신기하다. 훼손 정도가 덜했던 발견 초기에는 약 300개가 넘는 그림이 확인되었는데 이후 50년 동안 침수에 의해 많이 훼손되면서 육안으로 식별이 되는 그림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을 지나는 태화강의 지류 대곡천의 암벽에 새겨진 암각화이다. 제작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그림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에 속하며, 한반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암각화이다. 고래의 모습과 인류의 포경 활동을 묘사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암각화에는 고래 말고도 야생동물 수렵을 포함해 의미를 알기 힘든 문양과 기호 등도 많이 그려져 있다.

 

  손수여 시인은 수천 년 전 고래의 생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든 오늘날, 포경업으로 죽어가는 고래들보다 공해에 시달려 죽어가는 고래가 더 많음을 안타까워한다. 바다를 살려야 사람도 살 수 있다고 고래의 입을 빌려 얘기하는데 백 프로 사실이다. 쓰레기가 섬이 되어 떠다니는 바다에서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의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지금 멸종의 위기에 이른 고래는 참고래, 향고래, 밍크고래, 상괭이 등이다.

 

  바다에서 고래가 사라진다면 육지에서 인간도 멸종할지 모른다.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지구온난화와 탄소배출은 매연 때문이지만 바닷속은 유조선 기름 유출, 오염수 방류, 공장 폐수 방류, 생활용수 방류, 가금류 배설, 비닐과 플라스틱을 포함한 각종 쓰레기의 부유로 오염도가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그 옛날 바다의 주인은 고래였다. 울산 사람들이 배를 만들어 포위하며 고래를 잡아봤자 1년에 몇 마리 내지는 십여 마리였을 것이다. 포경업이 발달하면서 고래를 기름으로 쓰기 시작했고 고래의 수난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잘 나와 있다. 우리는 고래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시인은 솟대처럼 우두커니 서서/ 경계를 내려놓고 허구 세월을/ 반구대에서 지금도 시위 중인 고래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간을 꾸짖고 있다

울산 암각화 [ 사진 : 이승하 시인 제공]

  [손수여 시인]

 

  문학박사. 《한국시학》 《시세계》를 통해 시, 《월간문학》을 통해 문학평론 등단.

시집 『성스러운 해탈』『숨결, 그 자취를 찾아서』『설령, 콩깍지 끼었어도 좋다』 등. 학술서 『국어어휘론 연구방법』 『우리말 연구(공저)』 등.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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