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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눈 온 날 아침 - 맹난자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눈 온 날 아침    

    맹난자

 

    이른 새벽, 은총처럼 눈이 내린다. 싸락싸락.

    헐벗은 나뭇가지와 칙칙한 땅은 점점 두께를 더하는 흰 옷으로 남루를 벗는다. 어느새 풍요로운 순백의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따라서 순일純一해진다.   

눈 온 날 아침 [이미지: 류우강 기자]

  '가을 물은 하늘과 더불어 한 빛깔이라秋水共長天一色'던 시인 왕발王勃(<등왕각>)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나는 지금 하늘과 땅과 더불어 '천지공설 아일색天地共雪我一色'으로 마음은 온통 흰 빛깔로 눈이 부시다. 마음은 본래 없다는데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을 순일한 세계로 이끄는 것일까. 만약 눈앞에 펼쳐진 대상雪境이 없다면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眼根이 없다면, 또한 그것을 판단하는 인식識이 없다면 그래도 마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불가에서는 마음이란 근.경.식이 상호 연기적 작용을 통하여 펼쳐낸 세계라고 말한다.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8)도 '마음은 어떤 관계에 의해 결합된 상이相異한 지각知覺들의 모음에 불과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마음은 우리의 감각기관(눈.귀.코.혀.몸)이 대상을 따라 일으킨 인식 작용의 표출이다. 따라서 대상이 없다면 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마음 또한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다. 인연으로 생겨난 것은 본래 실체가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털장갑을 끼고 눈이 덮인 홍제동 뒷산에 올라 화장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오랫동안 마주한 적이 있었다. 이장移葬 공고를 받고도 놓쳐버린 동생의 시신을 떠올리며 속죄의 눈물로 서 있던 65년 전. 야산을 덮은 흰 눈밭과 하늘로 퍼지던 허연 잿빛 연기 속에서 동생의 실체를 느껴보려 애썼다. 수시로 모양을 달리하며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들은 생사의 실체 없음을 기표記標하는 통고로 다가왔다. 

 

    돌을 던지면 쨍!하고 갈라지듯, 유리처럼 투명한 겨울 하늘. 의식은 더없이 맑은데, 내가 디딘 땅은 비현실 같았다. 상실, 슬픔, 고통의 세월이 흐른 뒤 그것들은 모두 비현실로 지나갔다. 마음은 본디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의 슬픔과 분노는 다만 생각이 그린 허공의 붓 자국 같은 것이었을까. 시간이 흐른 뒤, 감정은 점점 여과되고 그것들은 모두 들판의 신기루처럼 여겨졌다. 

    

    지금 내 눈앞에 가득 들어찬 순백의 고요가 나를 적멸寂滅로 이끈다. 목전의 설경을 바라보며 눈의 시원始原은 어디로부터일까. 그리고 나의 존재는? 하는데 갑자기 전구가 나간 듯, 눈앞의 풍경도 사라지고 나도 없다. 설경雪境의 공성空性인가. 

 

    텅 빈 적막, 눈 온 날 아침에 내가 마주한 세상이다. 

 

* 근.경.식 : 우리의 모든 경험과 번뇌가 시작되는 지점 

                     근-눈 귀 코 혀 몸 마음 (감각기관), 

                     경-색깔 소리 냄새 맛 감촉 사물(인식의 대상), 

                     식-눈으로 보는 인식(안식), 귀로 듣는 인식(이식) 

                  

* 공성空性 :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는 독립적이고 고정적인 실체(자성)가 없으며, 인연에 따라 생                         기고 사라지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임

                        공성은 '없다'는 허무가 아닌,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음(空)'과 꽉 차 있음(有)'을 함께                         지니는 연기緣起와 연결되는데, 현상이 조건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진여(眞                           如)의 다른 이름임

                        공空의 이치를 깨달아 자유롭고 의미 있는 삶으로 나아가는 바탕이 됨

    [심향 단상]

 

     이른 새벽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눈 온 날 아침'에 작가는 생각에 잠깁니다. 눈으로 덮인 순백의 세상은 모든 것을 덮고 다시 깨어나게 하려는 듯 우리의 마음도 하얀 도화지처럼 순수로 돌아가게 합니다.  

    

    펑펑 내리는 눈은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하얀 눈을 듬뿍 뿌려 소복이 올려줍니다. 텅 빈 계절에 풍요가 찾아오는 순간입니다. 

 

    마음 심(心)은 사람의 심장을 본 떠서 만든 한자로 '마음' '생각' '심장' '중심' '근본'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모든 행동의 깊은 바닥에는 마음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는 행동도 원만하다가 기쁜 일이 있거나 놀라운 일이 생겼을 때는 벌떡 일어섰다가 앉았다를 반복하며 행동에 변화를 줍니다. 행동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나아가고 주저 앉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든 것도 '하겠다' '할 수 있다' 라고 마음을 먹고 행하면 그에 맞는 결과가 따라오고, 반대로 '할 수 없다''안 하겠다' 라고 생각하면 아무 변화 없이 지나갑니다. 마음이 행동을 좌지우지하여 그 행동의 결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마음은 항상 행동을 따라다니며 지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관여합니다. 그래서 또 행동은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마음은 쉽게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데,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잘 열지 않아서 생각을 알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말을 하고도 행동은 다르게 할 수 있고, 자신의 말을 행동에 그대로 옮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의 속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신중해야 하며, 사람의 속마음은 물속처럼 깊고 복잡하여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는 그 속마음을 알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우쳐줍니다. 진심을 담아 상대방을 칭찬하는 말, 겸손한 말, 위로의 말로 좋은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좋은 말, 긍정적인 말을 하여 좋은 결과를 얻어야겠습니다. 순한 말, 사랑의 말, 배려하는 말을 자주 하면 행동도 순해지고 좋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밭'에도 좋은 씨를 뿌려서 마음도 풍요로워야겠습니다.  

    

    어렵지 않은 인생 길이 있을까요? 


    2026년 병오년 새해에 그동안 다져진 것을 발판 삼아 새롭게 도약하여 의미 있는, 행복한 한 해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코리안드림문학 편집위원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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