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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탐방] 용문산 사나사 가는 숲길에서 만난 기산음악박물관…그곳에 한국 국악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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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옥천면 사나사계곡 길목에 자리한 ‘기산음악박물관 ’국악계의 거목 기산 박헌봉의 삶과 한국 전통음악 역사를 한곳에 희귀 음원·고서·국악기·서신 등 품은 작은 박물관의 큰 이야기 아직은 찾는 이 많지 않은 ‘숨은 문화공간’…양평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주목해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서 용문산 사나사(舍那寺)로 향하는 길은 번잡한 관광지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산과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도시의 소음보다 나무와 바람의 소리가 먼저 다가온다.

 

8월 18일 용문산 사나사로 향하던 길이었다. 산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문득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기산음악박물관.’ 이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평일이어서인지 주변은 무척 조용했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도 많지 않았다. 사나사와 사나사계곡을 찾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그 길목에 우리나라 전통음악사의 중요한 인물을 기리는 음악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생각이 달라진다.

 

이곳은 단순히 한 음악가를 추억하는 작은 기념관이 아니었다.

 

한국 전통음악이 근현대사의 격랑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서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의 삶과 시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나사 가는 길에서 뜻밖에 만난 박물관

기산음악박물관 전경

기산음악박물관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208-10, 사나사계곡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양평군은 이곳을 ‘기산음악박물관(기산 M&B 뮤지엄)’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변의 풍경과 박물관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기산음악박뭍관 앞마당

대도시 한복판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공간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이곳에 보존된 오래된 음악과 기록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박물관이 기념하고 있는 사람은 기산(岐山) 박헌봉(1906~1977) 선생이다.

 

우리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한국 국악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24년 5월 문을 연 기산음악박물관은 박헌봉 선생의 손자인 박태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관장을 맡아 조부가 남긴 정신과 자료를 이어가고 있다. 개관 당시 양평군수는 이 박물관의 탄생을 두고 양평에 새로운 문화적 자산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음악을 지키려 했던 사람

 

박헌봉 선생의 생애를 알고 나면 박물관의 의미가 한층 또렷해진다.

기산 박헌봉 선생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가 심각한 억압을 받던 시대였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헌봉은 1940년 당시 조선음악협회에 조선악부를 만들고 상무이사를 맡아 우리 전통음악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남도와 서도 등을 돌며 이동백·박녹주 등 명창의 판소리 공연을 추진했고, 박춘재·김봉업 등이 참여하는 전통공연을 이어갔지만 일제의 탄압과 공연 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가 한 일은 공연을 개최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1930~40년대 전국을 다니며 명창들의 민요와 판소리를 직접 녹음하고 채보했다. 오늘날처럼 손쉽게 음성을 디지털 파일로 남길 수 없었던 시대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소리를 기록해 후대에 전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소리의 기억’ 가운데 일부는 지금 기산음악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명창들의 판소리 육성을 담은 릴테이프 원본을 비롯한 귀중한 음악자료가 보존돼 있다. 오래된 물건 하나하나를 단순한 유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라질 뻔했던 소리를 붙잡아 둔 시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해방 후에는 국악의 ‘제도’를 만들었다

 

박헌봉의 활동은 광복 이후 더욱 본격화된다.

 

그는 국악이 몇몇 명인의 개인적 기량에 의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기관과 연주단체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헌봉은 대한국악원 창설에 참여하고 여러 차례 이사장을 맡았으며, 1960년 국악예술학교를 창립하고 국악관현악단 창단에도 힘을 쏟았다. 오늘날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교육 시스템과 국악관현악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셈이다. 

 

특히 국악예술학교의 창립은 의미가 크다.

 

전통음악을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전승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교라는 교육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전통예술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인이 체계적인 학교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에는 이러한 선구자들의 노력이 놓여 있다.

 

해외를 향해서도 일찍 눈을 돌렸다. 박헌봉은 한국 전통예술단을 이끌고 해외 무대에서 부채춤과 농악을 비롯한 한국 전통예술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지금 전 세계를 움직이는 ‘한류’라는 말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한국의 음악과 춤을 외국에 소개했던 것이다. 양평군 역시 이러한 활동을 오늘날 한류의 기반을 닦은 선구적 활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사람을 보면 한국 국악사가 보인다

 

기산음악박물관이 흥미로운 이유는 박헌봉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근현대 국악사가 펼쳐진다는 데 있다.

 

박헌봉은 연주자만도 아니었고 행정가만도 아니었다.

음악자료를 수집한 기록자였으며, 우리 음악을 연구한 국악이론가이자 교육자였고, 학교와 연주단체를 만든 문화기획자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가 『창악대강』이다.

 

이 책에는 창악의 기원과 유래, 음조를 비롯한 방대한 이론이 정리돼 있어 ‘국악대사전’에 비견될 정도로 중요한 저술로 평가된다. 그는 이후 한국음악을 보다 폭넓게 집대성하는 『국악대관』 집필에도 매달렸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1977년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음악을 듣고, 기록하고, 가르치고, 제도를 만들고, 세계에 알리고, 마지막까지 책으로 정리하려 했던 것이다.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한 개인의 집념이 한 시대의 문화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1층에는 책, 2층에는 기산의 삶…3층에서는 잠시 쉬어간다

 

박물관은 3층 규모로 구성돼 있다.

약 3만 권에 이르는 장서를 중심으로 한 북 뮤지엄 공간

1층에는 약 3만 권에 이르는 장서를 중심으로 한 북 뮤지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오래된 국악 관련 서적과 음반 등도 접할 수 있어 음악사뿐 아니라 근현대 문화자료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박헌봉 선생의 삶이 보다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개인사와 국악 관련 자료, 각종 국악기 등을 통해 그가 지나온 시간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그림, 오래된 사진과 기록물도 전시돼 있으며 특히 과거 명창들의 소리가 담긴 릴테이프는 이곳의 중요한 자료 가운데 하나다. 

오래된 거문고와 가야금 같은 전통악기 역시 눈길을 붙잡는다.

박물관이라는 곳은 결국 ‘시간을 보관하는 장소’인지 모른다.

책은 생각을 보관하고, 사진은 순간을 보관하며, 악기는 사람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리고 녹음테이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그것이 음악박물관이 일반적인 역사박물관과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이유다.

 

위층에는 잠시 쉬며 주변의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깊은 산과 용문산 사나사계곡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박물관과 자연이 별개의 공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2024년 문을 열어 이제 겨우 두 돌을 넘긴 박물관

 

기산음악박물관은 오랜 역사를 가진 박물관이 아니다.

 

2024년 5월 11일 공식 개관했다. 아직 개관한 지 2년여에 불과한 새로운 문화공간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박물관 야외공연장에서 개관을 기념하는 ‘사나사 숲 콘서트’도 열렸다. 소찬휘·이창민·솔지 등 대중가수들이 참여한 공연이었다. 박물관이 과거의 국악만 보존하는 곳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음악이 만나는 복합적인 음악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에서 흔히 떠올리는 정적인 공간과 달리, 이곳은 공연과 책, 기록과 휴식이 함께하는 곳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문제는 ‘좋은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다

직접 찾아가 보니 한 가지 아쉬움은 분명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물론 조용히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방문객에게 큰 장점이다. 하지만 우리 국악사의 귀중한 자료와 한 시대를 살았던 문화인의 기록을 이렇게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는 공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더구나 기산음악박물관은 용문산 사나사와 사나사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양평을 찾은 사람들이 사나사만 둘러보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사나사–기산음악박물관’을 하나의 문화관광 코스로 생각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산사를 찾아 천년의 시간을 만나고, 박물관에서 우리 음악의 근현대사를 만나며, 계곡과 숲에서 자연을 만나는 여행이다. 양평이 가진 자연관광 자원에 문화와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더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인 셈이다.

 

박물관 자체의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양평군 차원의 관광 연계 프로그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악·역사 체험 프로그램, 정기적인 음악회와 해설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된다면 훨씬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를 맞아 박헌봉 선생이 남긴 릴테이프와 사진, 문서 등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디지털화하고 일부를 온라인에서 공개한다면 기산음악박물관은 지역 박물관을 넘어 한국 근현대 전통음악 아카이브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소리를 남긴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

 

박물관을 나서 다시 용문산 사나사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섰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같은 길인데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듣는 판소리와 민요, 국악관현악의 뒤에는 그것을 지키고 기록하고 교육하려고 평생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기산 박헌봉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은 떠난다.

연주도 끝난다.

무대의 불도 꺼진다.

 

그러나 누군가 그 소리를 기록해 두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록된 소리는 다시 살아난다.

 

어쩌면 기산음악박물관은 바로 그런 곳이다. 한 음악가의 유품을 모아놓은 장소를 넘어 사라질 수도 있었던 우리 음악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건네주는 작은 시간의 창고다.

아직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는 아니다.

 

커다란 광고판도, 줄을 서서 입장하는 관람객도 쉽게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사나사로 향하는 조용한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박물관. 그 문 안에는 예상보다 훨씬 큰 대한민국 음악사의 한 페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평을 찾는다면 사나사만 보고 지나치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잠시 차를 세우고 기산음악박물관의 문을 열어보자. 그곳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일생을 넘어, 우리 음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과 그들이 남겨놓은 오래된 ‘소리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기산음악박물관 관람 안내

  •  
  • 명칭: 기산음악박물관(기산 M&B 뮤지엄)
  • 주소: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208-10
  • 관람시간: 3~10월 오전 10시~오후 6시 / 11~2월 오전 10시~오후 5시
  • 휴관: 매주 월요일
  • 관람료: 성인 3,500원 / 청소년·군인 3,000원 / 65세 이상 3,000원 / 어린이(12세 이하) 2,500원
  • 문의: 031-771-8732
  • 주요시설: 박헌봉 관련 전시, 국악자료 및 악기 전시, 북 뮤지엄, 휴게·문화공간
  • 주변 연계: 사나사·사나사계곡

    홈페이지

  •  
  • 기산 박헌봉선생 소개 
  • 기산 빅헌봉선생
  • 기산 박헌봉선생(1906 ~ 1977)은 일제강점기인 1930 ~ 40년대에 일제가 조선음악협회에 양악부와 방학부(일본음악)만을 조직한 것에 맞서, 조선악부를 만들어 상무이사로서 이동백. 박녹주 등 판소리 명창과 박춘재.김봉업 등 산대희 놀이 명인들 60~70명을 꾸려 평안도와 전라도 등에서 공연을 하여 체포, 구금을 당하는 등 민족음악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  
  • 해방 후에는 문화재위원으로서 인간문화재 제도(현재의 무형문화재)를 창안하고 국악예술학교를 창립하였으며 최초로 국악관현악단(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만들었다. 현재의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대한국악원장을 세 차례 연임하였고, 1945년부터 1960년까지 함경도,평안도를 비롯하여 전라도, 경상도를 돌면서 민요, 판소리, 잡가, 남사당놀이 등을 릴테이프에 채록하여 자료의 일부를 국가에 기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를 창설하여 한국음악을 전공하는 예술인들을 교육하는 데 앞장섰을뿐더러, 한국전통음악예술단 30 ~ 50명을 이끌고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를 돌면서 부채춤과 농악 등을 선보여 오늘날 한류의 기반을 다졌다. 양평에 기산박물관이 세워진 계기는 함경도부터 강원도와 경기도를 거쳐 전라경상도를 돌면서 한국민속음악을 채집하던 중 두물머리 근처에서 머물며 경기민요 등을 채록했다는 증언과 기록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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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에는 한국 최초의 창악이론서인 창악대강(唱樂大綱) 출판으로 서울시문화상과 한국일보 출판문화대상을 받았다. 1970년대에는 한국음악을 집대성한 국악대관(國樂大觀) 을 집필하던 중 병환으로 1977년에 별세하였다. 정부는 기산의 공적을 기려 1974년에 새롭게 제정된 금관 문화훈장 제2(1975)를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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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서 유명인의 개인 음악박물관으로 통영의 윤이상 음악박물관과 쌍벽을 이루는 기산음악박물관이 20241종 전문박물관으로 새로 생긴다. 중요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면,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식에서 자신이 창작한 오페라 <심청전>을 올림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 <심청전> 창작의 원동력이 되는 판소리 <심청가> 대본을 고향 산청의 대선배(11살 차이)인 기산 박헌봉선생에게 서신으로 요청, 받아서 여러 차례 들으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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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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