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의 오래된 빛으로 오늘의 우주를 그리다…김영준 초대전, 일조원갤러리서 개최
오랜 세월 우리 삶과 함께해 온 나전의 빛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형언어로 되살아난다.

일조원갤러리 원아트(Wonart)는 2026년 10월 1일부터 28일까지 김영준 작가 초대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전통 공예의 대표적 소재인 자개를 회화와 입체, 추상적 조형으로 확장해온 김영준 작가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빛이다. 그러나 김영준의 작품에서 빛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관람객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자개의 표면은 보랏빛과 푸른빛, 금빛과 초록빛 사이를 오가며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같은 작품도 바라보는 위치와 조명의 방향에 따라 전혀 새로운 화면으로 변화한다.
이는 김영준이 나전을 단순한 전통 장식 재료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매체’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전에서 발견한 새로운 시간
김영준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오래된 나전의 빛에서 새로운 시간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나전칠기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이지만 작가에게 나전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는다. 자개가 품고 있는 고유한 빛과 색채, 곡선과 깊이를 활용해 오늘의 감성과 공간을 표현하는 현대적 재료다.
작가는 자개 한 조각 한 조각을 붙이고 다듬는 오랜 노동의 과정에 주목한다. 붙이고, 덜어내고, 다시 채우는 반복 속에는 시간이 축적된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의 표면은 단순한 평면을 넘어 수많은 시간의 층을 품는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한 조각 한 조각 자개를 붙이고 다듬는 과정은 비우고 채우는 시간의 반복”이라며 “그 속에서 빛은 고정되지 않고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원 안에 펼쳐지는 우주와 시간의 궤적
이번 전시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원형 작품들이다.

화면 중심에서 바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심원과 나선형의 흔적은 마치 우주의 궤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무의 나이테 또는 물 위로 번지는 파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둥근 화면을 따라 반복되는 자개의 작은 조각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개별 요소이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연결된다.
중심에서 시작된 빛은 원을 따라 바깥으로 확장되고 다시 중심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이는 생성과 소멸,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을 연상시킨다.
특히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원형 작품들은 조명을 받을 때 자개 특유의 간섭색이 살아나면서 평면 위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푸른빛과 보랏빛, 녹색과 금빛이 겹쳐지며 작품의 내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공간처럼 펼쳐진다.
김영준이 말하는 ‘오늘의 우주’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전통과 현대 사이, 나전의 새로운 조형 가능성
전시장에는 원형 작품뿐 아니라 사각형과 직사각형 화면을 활용한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어두운 남색과 붉은색, 녹색의 화면에 금빛 또는 자개의 선이 수직으로 자리한 작품들은 한국적인 색채와 현대 추상회화의 절제된 구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일부 작품에서는 항아리와 꽃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하는 반면, 다른 작품에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선, 면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처럼 김영준은 나전을 특정한 형식에 가두지 않는다.
전통적인 소재와 현대적인 추상, 구상과 비구상, 평면과 입체가 자유롭게 교차한다. 특히 자개 특유의 화려함을 화면 전체에 과도하게 사용하는 대신 검은색과 짙은 청색, 붉은색 같은 깊은 색면과 여백을 함께 배치하면서 빛 자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화려함보다는 절제 속에서 빛을 발견하게 하는 방식이다.
‘장식’을 넘어 현대예술의 재료로
나전은 흔히 자개장이나 공예품을 통해 익숙하게 접해온 소재다. 그러나 김영준은 나전을 공예의 영역에서 현대미술의 표현 재료로 확장한다.

전통적으로 나전칠기는 옻칠한 표면에 얇게 가공한 조개껍데기를 붙이고 문양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김영준 역시 이러한 나전의 물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정해진 문양을 재현하기보다는 색채와 질감, 빛의 변화 자체를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삼는다.
이러한 접근은 전통적인 소재가 현대미술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의 의미 역시 특정한 하나의 이야기로 제한되지 않는다. 관람객이 어느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빛이 달라지는 것처럼 작품에 대한 해석도 개인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김영준은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 장식과 예술, 빛과 여백이 만나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빛과 여백이 만드는 또 하나의 공간
김영준의 작품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여백이다.

자개가 화려한 빛을 발할수록 주변의 어두운 색면이나 비어 있는 공간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진다. 빛은 어둠 속에서 강해지고, 채워진 부분은 비워진 부분에 의해 존재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대비는 작품을 단순히 장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자개 조각들은 시간의 축적이라면, 그 사이의 여백은 시간이 머물다 가는 공간과도 같다.
전시장에서 작품 앞에 서면 자개의 반짝임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관람자는 빛 사이의 어둠과 침묵, 그리고 화면이 만들어내는 깊이를 만나게 된다.
“나전의 오래된 빛으로 오늘의 우주를 이야기하고 싶다”
김영준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업 방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나는 나전의 오래된 빛으로 오늘의 우주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의 작품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재료 안에 숨어 있던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 작업의 중심이다.
전통은 보존해야 할 과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이번 김영준 초대전은 전통 나전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과 물성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다시 바라보는 자리다. 수천 개의 작은 자개 조각이 모여 하나의 빛을 만들고, 그 빛이 다시 시간과 우주의 이미지로 확장되는 과정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한국 전통 소재가 지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영준의 작품 앞에서는 작품을 한 번 보고 지나가기보다 위치를 조금씩 바꾸어가며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 걸음 옆으로 움직이는 순간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빛 속에서 오래된 나전은 더 이상 과거의 재료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전시 개요
전시명: 일조원갤러리 기획전 김영준 초대전
작가: 김영준
기간: 2026년 10월 1일(목)~10월 28일(수)
장소: 일조원갤러리 원아트(Wonart)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38 농협 B1층
문의: 02-725-3588
기획: 일조원갤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