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시 /시조

[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58] 김강호의 “향기로운 말”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사람다운 말의 품격을 스스로에게 묻는 다짐의 시조”

 향기로운 말

 

김강호

 

햇살 쌓인 돌담 곁 상큼한 꽃 몽우리가

날 넌지시 올려보며 입시울을 열더니

은은한 향기의 말을 아리땁게 피워 놓네

 

쪽빛 잠긴 연못이거나 청랑한 거울이거나

내가 가 닿기도 전에 먼저 들어앉아서

부시게 너울거리는 말 이랑을 만드네

 

생각 없이 툭툭 던진 내 말이 부끄러워

알량한 말의 씨를 남김없이 다 버리고

, 나도 꽃 몽우리 같은 입시울을 열겠네

향기로운 말 _ 김강호 시인

「향기로운 말」은 말을 꽃의 향기로 형상화하여, 언어가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스며들고 피어나는가를 담아내고자 한 작품이다. 살아가면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는 장면들을 자주 보아 왔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좋은 말이란 무엇인가를 자연의 이미지를 빌려 향기롭게 풀어내고 싶었다. 특히 꽃과 햇살, 연못과 물결 같은 맑은 사물들을 통해 인간 언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형상화하고자 했다.

 

첫 수에서 햇살 쌓인 돌담 곁 상큼한 꽃 몽우리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햇살은 따뜻한 마음이며, 돌담은 세월을 견뎌 온 삶의 자리이다. 그 곁에서 피어나는 꽃 몽우리는 아직 다 열리지 않은 순수한 말의 가능성이다. 나는 꽃 몽우리를 사람처럼 날 넌지시 올려보며 입시울을 열더니라고 표현했다. 꽃이 입술처럼 열리는 장면을 통해, 향기로운 말은 억지로 꾸며낸 언어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마음의 숨결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이어지는 은은한 향기의 말을 아리땁게 피워 놓네에서는 말을 향기로 치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말이 지닌 울림과 파장을 물의 이미지로 확장하였다. “쪽빛 잠긴 연못은 깊고 맑은 정신세계이며, “청랑한 거울은 자신을 비추어 보는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향기로운 말이란 상대보다 앞서 자신을 먼저 맑게 비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가 닿기도 전에 먼저 들어앉아서라는 표현을 통해 좋은 말은 계산이나 꾸밈보다 먼저 마음속에 깃드는 것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부시게 너울거리는 말 이랑이라는 표현에는 언어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생명의 결이 생겨난다는 뜻을 담았다.

 

셋째 수에서는 시선이 타인에게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생각 없이 툭툭 던진 내 말은 살아오며 무심코 내뱉었던 거칠고 가벼운 언어를 반성하는 대목이다. ‘툭툭이라는 표현을 통해 말의 무게 없음과 상처의 순간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싶었다. 이어지는 알량한 말의 씨는 허세와 가벼움만 남은 언어의 근원을 말한다. 씨앗은 본래 생명을 틔우지만, 잘못된 말의 씨는 오히려 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그래서 그것을 남김없이 다 버리고마침내 꽃 몽우리 같은 입시울을 열겠다는 다짐이다.

 

이 작품은 화려한 기교보다 맑고 은은한 울림에 중심을 두고 쓴 시조다. 말을 꽃처럼 피어나게 하고 싶었고, 향기처럼 오래 남게 하고 싶었다. 결국 「향기로운 말」은 언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사람다운 말의 품격을 스스로에게 묻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강호시조시인#시조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조해설#시조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