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23] 이훈자의 "열한 번째 아픈 손가락"
열한 번째 아픈 손가락
이훈자
스웨덴에 사는 아들 또래 단젤 지수 남 린드버그*
2개월 무렵 스웨덴으로 입양을 갔대요
마흔여섯 살인 지금 제 뿌리를 찾으려고 해요
입양 서류 친모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나이가 비슷하다는 간절함으로
내 손톱 조각이 필요하다고 부탁하는데
뿌리치지 않고 뭐든 해주고 싶어요
그동안 손톱을 깎아 버리면서
버려야 하는 것에 진심을 담아보진 않았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손톱 조각을 보내는 일
스킨답서스 키우듯 손톱이 자라기를
손 씻고 핸드크림 바를 때마다 응원해줬지요
멸치도 많이 먹었어요
이제 시간이 되었어요
비행기 타고 가서 친자 검사해주라고
길게 기른 손톱을 잘랐지요
열한 번째 아픈 손가락이 생겼어요
내가 엄마가 아니어서 더 아픈 손가락
*1978년 9월에 태어나 몇 달 안 된 아기로 스웨덴으로 입양, 현재 스웨덴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영화, 음악(K-pop), 음식, 패션, 정치, 문학 등에 대해 보도하고 기사를 쓰고 있음.
―『흑당커피가 녹아드는 시간』(문학공원, 2024)

[해설]
엄마 찾아 3만리
이 시에 전개되는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다.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46세에 이른 한 남자가 어머니를 찾겠다고 동명이인 엄마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시를 쓴 이훈자 여사는 스웨덴 입양기관의 요청으로 손톱을 깎아서 보내긴 하지만 그런 아들을 낳은 적이 없으므로 결과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들 나이뻘의 그 스웨덴 중년 남성이 딱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외국으로 입양되어 간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친모를 찾고자 애쓰는 장면은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도, 영화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런 시도를 한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것이다. 1983년에 여의도 광장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 때 가족이 수십 년 만에 만나 통곡하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모자 혹은 모녀가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어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자식이 자신의 친모를 찾아서 한동안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귀국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입양서류에 ‘이훈자’라고 흔치 않은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나이까지 비슷해 린드버그 씨는 큰 기대를 했을 것이다. 손톱으로 DNA 검사를 해 친모-친자 확인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마지막 연이 아련한 통증을 준다. 이 시의 바로 뒷면에는 이훈자 시인에게 린드버그 씨가 보내준 장문의 편지가 실려 있다. 아래는 그 내용 중 일부.
“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제가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제 가족이 어디에서 사는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그 가족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사랑과 존경, 그리고 저의 영원한 질문에 답을 얻은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제가 정말 누구인지.”
사람들은 친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저들의 저 갈망을 잘 모를 것이다. 린드버그는 누나가 있고 여동생이 있는데 다 부모님의 친자식이라고 한다. 평화로운 집이라 잘 자랄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모습이 네 명 식구랑 달라 마음이 언제나 착잡했을 것이다. 자신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한국의 부모가 서로 사랑하여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리라. 나를 키울 수 없는 심각한 사정이 있었을 텐데, 도대체 무슨 사정일까? 내가 미혼모의 자식이었나? 강간으로 잉태된 것이 나일까? 한국은 가난하면 아이를 버리기도 했던 것일까?’
한국을 많이 알고 싶어서 이런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런 일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딱해서 어떻게 하나.
[이훈자 시인]
2005년 《스토리문학》으로 등단. 문학공원 동인. 시집 『고모리 호숫가』『어머니의 장독대』『그녀의 활자』『독도법을 익히다』 등. 현재 마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