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시 한 편을 269] 김연화 안젤라의 "김천 장날 55번 버스"

김천 장날 55번 버스

김연화 안젤라

아지매 어데 갔다 오는교

황금시장에서 참지름 짰지요

서울에 자취하는 아들딸 부쳐 줄라고

박카스 시원하게 드이소

후생당 약국 사모님은

단골손님들에게 아주 친절하다

성의여고 화예, 김천고 송설의 맥향

중앙고 향목, 성의고 원색, 김천여고 명록, 한일여고 나래

김천 시내 문예반 학생들이 문화원 시화전 관람하고

김천 삼각 로터리 지나 맘모스빵집으로 모였다

자두금 얼마 받았노

날은 뜨겁고 열매는 실하니 조아여

자두금이 파이라

히안해여 공판장 소장이 바낀 거라

아랫장터 버스 정류장이,

시끌벅적 김천 장날이

55번 버스로 옮겨 섰다

버스 안은 마카 술 냄새로 가득이다

낯익은 목소리도 들렸다

아버지가 술기운에 벌소리를 크게 지끼고 계셨다

버스 안내양 조용히 하라고 짜증을 낸다

말바우 재석에 사는 문예반 남학생들도 있는데

나는 너무 부끄러워 차창 너머 초록 들판만 바라보았다

김천에서 구미가 종점인 55번 시내버스

무실 삼거리 지나 용시 용신촌에서

시골 아지매 아재들 하나, 둘 니리고

버스는 초실에서 내려야 할 아버지와

해거름녘을 싣고

대신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개박골 포도꽃들이 앙등할 낀데』(걷는사람, 2025) 

  [해설]

   아이고 아부지 제발 좀

  내 아버지는 경찰관이셨는데 전근을 자주 다니셨다. 나의 출생지는 경북 의성군 안계면이지만 내가 너덧 살 때 아버지께서 김천으로 전근을 가 내 고향은 김천이 되었고 본적지도 김천시 성내동 210-1번지가 되었다. 김천이 낳은 시인으로 백수 정완영 시조시인이 있고 출향 문인으로 정선기ㆍ이동순ㆍ정영숙ㆍ배정미ㆍ문수영ㆍ문태준ㆍ김종태ㆍ성국희ㆍ송일호ㆍ송재옥ㆍ이경옥ㆍ전성재ㆍ김보람 시인, 김연수 소설가 등이 있다. 근년에 등단한 출향 문인 중 어떤 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등단 7년 만에 처음으로 시집을 낸 김연화 안젤라 시인의 시집에는 내 고향 사투리가 왕창 나와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김천은 경북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대구와 대전 사이에 있다. 사투리가 독특하다. 자두를 생산하여 돈을 얼마 벌었냐고 물어보니 날이 뜨거워 아주 실하게 열매가 열렸지만 과잉 생산으로 판매단가가 내려 별로 못 벌었다는 얘기가 “자두금 얼마 받았노/ 날은 뜨겁고 열매는 실하니 조아여/ 자두금이 파이라”이다. 공판장 소장이 바뀐 것도 안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집에 가는 55번 버스를 탄 고등학생 화자는 시화전을 관람한 다른 학교 문예반 남학생들이 탄 버스 안이라 좌불안석이다. 그런데 술에 취한 아버지가 벌소리를 크게 지껄이고 계신다.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다. 이윽고 내려야 할 곳에 아버지와 함께 내리긴 했는데 집에 같이 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이 시는 표준말로 쓰면 50점인데 사투리로 썼기에 100점이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술기운에 벌소리를 크게 지끼고 계셨다”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 들어 있어 명구가 되었다. 아 아버지, 버스 안내양이 조용히 좀 하시라고 지청구를 했으니 고만 미워 죽겠다.

  [김연화 안젤라 시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월간 《현대시》 편집부에서 근무했으며 2018년 《시와 표현》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화성작가회의 회원이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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