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92] 김윤배의 "아바이에서"
아바이*에서
김윤배
최 예르고는 낡은 건물 벽에 이마를 기댔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작어를 할 줄 몰라 쫓겨난 학교는
까라까치나무 그늘 속에서
수박을 파는 동안 조금씩 낡아갔다
건너다보면 야트막한 구릉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토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시베리아를 질주하며 살아남은 아이들은
토굴 속에서도 해맑게 웃었다
아이들 웃음이 희망이었다
강제이주 이듬해 아바이들은 벽돌을 찍어 학교를 세웠다
우슈토베역에서 이곳 아바이까지
하늘길이었던 아이들의 뼈를
어디에 묻었던가
하늘길이었던 늙은 애비의 뼈를
어디에 묻었던가
최 예리고는 제르젠스키 한인학교 오래된
담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풍금 소리가 들린다
*우슈토베에서 남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로 강제이주된 한인들의 최초의 정착지이며 이주 1년 만에 제르젠스키 한인학교를 세웠다.
—『디아스포라의 발자국—러시아 시편』(달아실, 2025)

[해설]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역사
김윤배 시인은 고려인들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중앙아시아 각국을 취재 여행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았다. 장시집 『살아남은 사람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시베리아의 침묵』은 그래서 탄생할 수 있었다. 10월 29일에 나온 시집 『디아스포라의 발자국—러시아 시편』도 시인의 취재 여행의 결과물이다. 소설 쪽에서는 이광수의 『유정』, 안수길의 『북간도』, 박경리의 『토지』, 방현석의 『범도』 같은 작품이 한국문학의 공간을 대륙으로 넓혔는데 김윤배 시인의 3권의 시집 앞에 고개를 깊이 숙인다.
이 시를 보면 강제이주 1년 만에 한인학교를 세워서 한글과 민족의식을 가르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런 학교는 오래 못 버티고 문을 닫고 만다. 스탈린은 조선인의 민족의식 고취를 두려워해 강제이주시킨 조선인(러시아는 이들을 재중국 조선족과 구별 짓기 위해 ‘고려인’으로 부른다)이 각급 학교에 들어가면 절대로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재중국 조선족은 『조선어문』이라는 교과서를 통해 한글을 배울 수 있었지만 러시아는 한글 말살 정책을 썼다. 내가 만난 작가 김아나톨리는 우리말을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스탈린은 왜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이주시켰는가? 집 한 채는커녕 텐트 하나 내주지 않고 허허벌판에 이주만 시켜놓아 고려인은 토굴을 파고 겨울을 났다.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로 가보자.
구한말, 평안도와 함경도에 기근이 들어도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했으니 양반도 견디기 힘들었다. 국경을 넘어가면 만주벌판이었고 비옥한 평야가 많았다. 세금도 면제였다. 월경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만주의 동쪽 연해주는 러시아 땅이었다. 그런데 러일전쟁의 결과 사할린 남부를 러시아가 일본에 할양하였고 조선이 곧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연해주 일대에는 조선인이 넘쳐나게 되었다. 1917~1926년 상간에 극동의 고려인은 17만 명으로 늘어났다. 스탈린은 자기네 영토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이 일본과 내통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인의 사주를 받아 조선인들이 연해주에서 봉기를 일으키면 극동을 잃을 수 있다고 염려해 1935~1937년 사이에 2,500여 명의 지도자급 인사들의 명단을 확보, ‘일본 간첩’ 혐의로 처형한다. 이중 조명희도 끼어 있었다. 그런 연후에 극동의 고려인 17만 2천여 명을 1937년 9~10월에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고, 6,400km 열차 이동 중 최소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이주 후 고려인들은 악착같이 일하며 살아남았으나 한국어 사용 금지로 다음 세대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그다음 세대는 모국어를 완전히 잃게 된다.
화물열차에 실려 몇 날 며칠 오는 동안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아이들과 늙은 애비가 오는 동안 많이 죽었다. 왔더니 금방 겨울이 왔다. 옷도 이불로 제대로 못 챙겨왔고(어디로 보낸다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무조건 열차에 태웠다) 땅문서도 챙겨오지 못했다. 옷 몇 벌과 숟가락과 젓가락과 식기 몇 개만 챙기라고 했다. 최초의 정착지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에 가면 고려인 기념관이 있는데 당시의 토굴을 복원해놓은 사진이 있다. 김윤배는 그래도 희망적으로 시를 썼지만 수확 철도 지난 시점에 17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허허벌판에 내려놓고 나 몰라라 한 러시아의 국가폭력과 그 벌판에서 살아남은 고려인의 생명력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고려인의 후손들은 흩어져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국민의 일부를 이루게 된다. 디아스포라의 발자국, 바로 우리와 동족인 고려인들이다.
[김윤배 시인]
194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 생활을 시작했다. 시집 『겨울 숲에서』 『떠돌이의 노래』 『강 깊은 당신 편지』 『굴욕은 아름답다』 『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 『슬프도록 비천하고 슬프도록 당당한』 『부론에서 길을 잃다』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바람의 등을 보았다』 『마침내, 네가 비밀이 되었다』 『언약, 아름다웠다』 『그녀들의 루즈는 소음기가 장착된 피스톨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말은』, 장시집 『살아남은 사람들, 시베리아 횡단열차』 『사당 바우덕이』 『시베리아의 침묵』 『저, 미치도록 환한 사내』, 산문집 『시인들이 풍경』 『최울가는 울보가 아니다』, 평론집 『김수영 시학』, 동화집 『비를 부르는 소년』 『두노야 힘내』 등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