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세 현역 여성예술인의 시선
전국여성연극제 수상이 지역 여성예술에 남긴 의미
권청자 | (사)내제문화연구회 이사
연극은 한 사람의 열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의 경험이 모이고, 서로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여성극단 ‘정(情)’이 전국여성연극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성과를 넘어 지역 여성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2003년 제7회 전국여성연극제에서의 수상은 제천이라는 지역 안에서 활동하던 여성 예술인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작품이 전국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여성 역시 문화예술의 창작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며 지역 안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문화예술은 반드시 큰 도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있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역 여성예술의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계기가 되었다. 연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시작된 표현의 시도는 점차 음악과 움직임이 결합된 뮤지컬 형식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제천문화예술학교(대표 정옥용)의 드라마치유극 프로그램이었다. 드라마 치유극은 단순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고, 몸의 움직임과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과정은 참여자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나는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특히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넓어지게 된다.
드라마치유극은 이러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연극이 말 중심의 표현이라면 뮤지컬은 노래와 움직임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다.
다양한 표현 방식이 결합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특히 노래와 움직임은 언어를 넘어 감정을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기에 적합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 제작이 시작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호좌의병진」이다.
「호좌의병진」은 구한말 일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유인석 의병장이 의병을
모으고 제천 자양영당에서 항전하다 전멸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 제천은 일본군에 의해 불타 사라질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 비극적인 역사는 지역
공동체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공연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단순히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되새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뮤지컬 「호좌의병진」은 지역 문화예술의 표현 범위를 한 단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천 의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오랜 시간 지역 문화 활동(내제문화연구회)을 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표현할 수
있을 때 공동체가 더욱 단단해진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우리의 삶과 역사가 예술로 표현될 때 문화는 삶과 더욱 가까워진다.
또 하나 의미 있는 변화는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만든 뮤지컬 작업이었다.
예술은 특정한 사람들만 참여하는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지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뮤지컬 작업은 단순히 공연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업을 통해 탄생한 팀이 바로 유진박&엔젤스이다.
유진박&엔젤스는 제천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제천 지역 공연예술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의미 있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 무대였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예술의 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양성평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양성평등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이러한 존중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움직이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연극에서 시작된 지역 여성예술의 흐름이 여성 제작자의 기획을 통해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확장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방식이 넓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예술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시니어,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때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여성연극에서 출발한 작은 움직임이 지역 기반 창작뮤지컬로 이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무대에 서는 과정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은 지역 문화예술의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전국 여성연극제에서의 수상은 하나의 결과였지만, 그 이후 이어진 변화의 과정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한 번의 성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참여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지역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의 기회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누군가는 움직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며,
또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로 조금씩 나아가게
된다고 믿는다.
여성연극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이제 뮤지컬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