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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40] 김강호의 “백합”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삶의 깊은 층위에서 건져 올린 정신적 풍경

백합


김강호

 

어머니께

드린 말씀이

대궁으로 높게 서 있고

어머니

짧은 대답이

꽃으로

얹혀 있다

행복한

봄날 한 때를

인화해 놓은

앞마당

백합 _ 김강호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이 시의 백합은 단순한 한 송이가 아니라, 어머니와 화자 사이를 잇는말의 기둥이다. 화자가 어머니께 전한 말이 대궁으로 높게 서 있다는 표현은 그 말이 단순한 발화가 아니라 어머니를 향한 존경, 사랑, 감사의 기세로 곧게 뻗은 생의 줄기임을 암시한다. 백합의 대궁은 곧게 올라가며 빛을 향하지만, 여기서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그 위에짧은 대답이 꽃으로 얹혀 있다는 구절은, 어머니의 말이 길지 않음에도 꽃처럼 가장 맑고 간결한 정수만 남길 줄 아는 삶의 지혜로 드러냈다. 어머니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짧은 대답 속에 담긴 온기와 눈빛이 꽃의 향처럼 퍼져 나온다. 그래서 이 시에서의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응답이 피어난 형태로 본 것이다. ‘행복한 봄날 한때를 인화해 놓은 앞마당은 두 사람의 대화를 한 장의 사진처럼 고정해두었다. 앞마당은 가족의 삶이 가장 먼저 시작되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며, 그곳에 인화된 봄날은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추억, 기억의 풍경이다. 꽃과 말, 대답과 침묵, 봄과 빛이 순간에 포개져 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소박한 일상의 대화 속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형태를 갖추고 피어나는지를 '백합'이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말과 꽃이 서로를 닮아가는 순간, 삶의 가장 따뜻한 기억이 봄날 앞마당’(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41~4)에 인화되듯이 영원히 남았다. 이처럼 꽃들은 현실의 비루함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피어난 정신의 빛을 기록한다. 꽃은 자연의 사물이 아니라, 삶의 깊은 층위에서 건져 올린 정신적 풍경이다. 고통이 빛을 낳는다는 오래된 진실을, 꽃의 언어로 새롭게 쓰고 싶었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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