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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당가격, 예술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가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호당가격, 예술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는가한국 미술시장의 오래된 가격 공식에 대한 재검토

한국 미술시장에서 오랫동안 당연한 것처럼 사용되어 온 가격 기준이 있다. 바로 ‘호당가격’이다. 

 

작품을 이야기할 때 “이 작가는 호당 얼마다”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시장 언어처럼 자리 잡았다. 작품의 크기가 다르더라도 가격을 비교하기 쉽다는 이유로 화랑과 작가, 구매자 모두가 오랫동안 이 방식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든 지금,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과연 예술작품의 가치를 캔버스의 크기로 환산하는 방식이 여전히 타당한가.

호당가격 인포그래픽 

호당가격은 작품 가격을 캔버스의 ‘호수(號數)’ 기준으로 나눈 값이다. 

 

예를 들어 20호 작품이 2천만 원이라면 호당가격은 100만 원이 된다. 작가마다 일정한 호당가격이 형성되면 작품 크기에 따라 가격을 계산할 수 있다. 이는 화랑 입장에서는 관리가 편하고 구매자 역시 가격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가격 체계는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시기에는 작품 가격을 판단할 객관적인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다. 경매 기록도 많지 않았고, 작가별 판매 이력이나 거래 데이터 역시 체계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때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작품의 크기였다. 작가의 경력과 인지도에 작품 크기를 결합하면 비교적 쉽게 가격을 설정할 수 있었고, 이러한 방식은 점차 시장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편리한 기준이 반드시 합리적인 기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술작품은 공산품과 달리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어떤 작품은 대표작이 될 수 있고, 어떤 작품은 실험적인 작업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작품은 작가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당가격 체계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맥락보다 캔버스의 크기가 가격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본질보다 크기가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작은 작품이지만 높은 완성도와 예술적 의미를 지닌 경우도 많다. 반대로 큰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호당가격 체계에서는 자연스럽게 큰 작품일수록 높은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는 작가의 창작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크기의 작품이 반복적으로 생산되면서 작품의 다양성과 실험성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격의 투명성이다. 

 

호당가격은 겉으로 보기에는 객관적인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 거래 과정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정된다. 전시 상황이나 판매 대상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고 협상과 할인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제 거래가격과 공개 가격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격의 근거는 점점 불분명해지고 시장의 신뢰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오늘날 미술은 더 이상 회화 중심의 시장이 아니다. 설치미술, 사진, 판화, 미디어아트, 디지털 작업 등 다양한 매체와 형식이 등장하면서 작품의 가치를 캔버스 크기로 환산하는 방식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심지어 회화에서도 변형 캔버스나 입체적 표현 등 기존 규격을 벗어난 작업이 증가하고 있다. 

 

결국 호당가격은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기에는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는 호당가격을 절대적인 가격 기준으로 사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가격 구조가 필요하다. 

 

작품 가격은 작품의 제작 시기, 작가의 주요 작업 단계, 전시와 수상 이력, 소장 이력, 유사 작품의 실제 거래 사례, 비평적 평가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가격은 단순한 계산식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맥락을 해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한국 미술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이 작품은 몇 호인가”가 아니라 “이 작품은 왜 중요한가”를 묻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예술의 가치를 크기보다 의미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미술시장 역시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를 위한 문제 제기입니다.

필자: 임만택 한국아트네트워크협회 회장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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