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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8] 최예숙의 "뜨거운 대파"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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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대파

 

최예숙

 

요즘 뜨거운 감자가 아닌 대파다

 

역사에 남을 대파 가격 875

나의 시詩는 신문에도 TV에도 없다

 

천원도 안 되는 시 한 편 쓰려다

새벽닭도 울고 배꼽시계도 울린다

녹색과 흰색의 단어들이 베타카로틴을 만들어내는 동안

대파 앞에서 운다

그동안 묶어놨던 슬픔도 자르르 흐른다

 

유명 좌판에 베스트셀러로 시끄러운 알림도

어느 잡지 유명시인의 리뷰 한 줄 없어도

라면 받침대 밑에 있지 않으면 다행이다

 

늠름하고 단맛이 꽉 찬 대파밭에 가면

키 작고 가느다란 실파는 풀이 죽는다

 

시 한 편 875원이 되기까지

실파의 새끼에서 대파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

 

대파 한 뿌리 가격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무는 새와 별의 나들목』(도서출판 별꽃, 2024)

 

대파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최예숙 시인께 올립니다.

 

  대파 값이 875원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농부들이 완전히 울상이 되었지요. 어느 해는 무 값이, 어느 해는 양파 값이, 어느 해는 마늘 값이……. 생산 과잉이 되는 해가 있나 봅니다. 산지의 농부가 배추를 수확하지 않고 포클레인으로 갈아엎는 경우도 있었지요. 최예숙 시인께서는 어느 잡지 유명시인의 리뷰 한 줄 없어도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하고 계신데, 저는 유명시인이 아니지만 몇 마디 합니다.

 

  시를 정말 열심히, 아니, 죽으라 하고 썼지만 신인상 공모에 계속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등단 소식을 듣고 좋아했는데 그 문예지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데가 아니라고 하지요. 등단지라고 수십 권 사달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아예 강매하는 문예지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대의 2권 시집 다 읽어봤는데 시를 정말 열심히 쓰는 분이군요. 하지만 세상은 그대의 시집에 환호하지 않습니다. 라면 받침대 밑에 있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유명한 시인이 많은 겁니까. 잘나가는 시인이 많은 겁니까. 그들 앞에 서면 풀이 죽고, 기가 죽고, 아아 죽고 싶고? 그대는 자신이 875원까지 떨어진 대파 신세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새벽닭이 울 때까지, 배꼽시계가 울릴 때까지 써도 누가 알아주길 하나. 읽어주길 하나. 대파 앞에서 운 그대 심정을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고배를 벌컥벌컥 마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를 뽀득뽀득 갈면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시를 씁시다. 저 같은 독자가 있습니다. 하루도 안 빠뜨리고 시집을 읽는 이런 바보 맹추 같은 독자가 있습니다. 실파의 새끼에서 대파의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한 그대를 위해 저는 박수를 손바닥이 아프도록 칩니다. 언놈이 뭐래도 시를 열심히 씁시다. 제 시집 중 잘 팔린 게 없지만 저는 오늘도 이 세상을 원망하며, 용서하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뜨거운 대파가 된 그대를 저는 본받고 싶습니다.

 

   [최예숙 시인]

 

충남 홍성 갈산 출생. 《문파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한국문인협회, 현대시협회, 수지문학회 회원. 2019년 용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물방울이 범종을 친다』『나무는 새와 별의 나들목』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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