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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청소년 4000명, 연극 무대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배우다

류우강 기자
입력
“문화예술이 열어주는 시민성 교육의 새로운 장” 행복공장과 연극공간-해 공동 제작, 토론 연극 ‘라인’ 11월~ 12월, 전국 13개 지역 순회 공연 펼쳐

 

2025년 겨울, 강원도 동해의 한 고등학교 강당에서 특별한 장면이 펼쳐졌다. 객석에 앉아 있던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가 공연 속 상황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관객으로 머물지 않고 직접 배우가 되어 갈등을 해결해 보는 이 순간, 연극은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실험장이자 미래를 연습하는 공간이 된다. 

사단법인 행복공장과 연극공간-해가 공동 제작한 토론연극 ‘라인’은 1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13개 지역을 순회하며 4000여 명의 청소년을 만났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무대, 조명, 음악, 배우의 연기가 어우러진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청소년들은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가장 강력하게 체험했다.

‘라인’ 공연 모습

‘라인’은 토론연극(forum theatre) 형식을 취한다. 공연은 문제의 절정에서 끝나고, 관객은 무대 위로 올라가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 개념은 구체적 사건으로 변하고, 청소년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로서 갈등을 체험하며 스스로 깨닫는다. 대전의 한 학생은 “후보자들이 신념을 말하면서도 행동은 다르게 하는 걸 보며 나는 내 가치대로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 후 배우-관객 과의 대화(핫시팅, hot-seating)

공연은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으로 진행됐다. 힘, 자유, 평등, 경청, 포용을 주장하는 후보자들이 무대 위에서 경쟁하며 관객의 투표를 이끌어냈다. 이어지는 ‘핫시팅’에서는 학생들이 등장인물과 대화했고, 마지막에는 직접 무대에 올라가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했다. 공연은 100여 분 동안 음악과 영상, 조명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무대로 청소년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청소년들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했다. “평화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민주주의는 국민이 나라의 진짜 주인인 시스템”, “평화는 평범한 일상이고 민주주의는 그걸 지키는 방법이다.” 전쟁과 분쟁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자란 세대답게, 그들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관객이 관객-배우(spect-actor)로서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 속 문제를 바꿔보기 하는 모습


이번 공연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사회 갈등을 심각하게 느끼고, 민주주의 지수는 하락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이론이나 주장보다 예술을 통한 상상과 공감의 경험이다. 인천의 한 교사는 “아이들이 온라인에서는 익명으로 싸우는 데 익숙하지만 얼굴 맞대고 다른 의견을 나누는 건 서툴다”며, 이번 공연이 서로의 생각을 듣고 질문하는 시작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연극공간-해 김현정 대표는 “‘라인’은 분단국이라는 우리의 특수성을 반영해 ‘선’을 모티브로 했다”며 “선은 우리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가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평화를 연극 무대 위에서 상상하고 체험하며 현실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갈등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 4000여 명은 연극 무대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스스로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들보다 더 명확하게 답했다. “평화는 평범한 일상이고, 민주주의는 그걸 지키는 방법이다.”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공간-해는 1997년 창설 이래 제3세계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알(A.Boal)의 연극방법론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을 토대로 하는 ‘토론연극(forum theatre)’과 즉흥재현연극인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 기법을 활용한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 교육, 치유, 응용연극 전문단체로, 다양한 개인과 사회의 문제 혹은 이슈를 연극을 통해 함께 ‘풀어내(解)’고, 개인과 공동체가 보다 건강하게 변화·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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