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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9】 고무장갑 지청구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고무장갑 지청구

김선호  

   몇 번이나 썼다고, 우와 진짜 짜증나네!

 

  설거지를 하다 말고 고무장갑 팽개치며 닦는 건 오른쪽인데 와 왼쪽이 새냐 말이다 번번이 왼쪽 때문에 새로 사는 기 말이 되나?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티브이 보는 서방한테 다짜고짜 쏟아놓으니 아닌 밤 홍두깨라고 어안이 벙벙한 기라 가만히 있다가는 무슨 불똥 튈지 몰라 아 글쎄 아 글쎄 하며 잔머리를 굴리는데 궁하면 통한다더니 신의 한 수 솟는 기라 목소리를 착 내리며 공장을 보거레이 사장 반장 이런 부류 일하자고 떠들어도 말없이 골병드는 건 말단 근로자 아니드나 시끌벅쩍 요란한 기 겉으로야 그럴듯해도 속으로 들어가 보면 텅텅 빈 강정이라 묵묵히 일하는 이가 나라를 이끈데이 오른쪽만 눈에 띄는 장갑이라고 다르겠나 미끄러운 세제 묻혀 수세미로 박박 밀 때 왼쪽이 꽉 잡아주며 그 압박을 견디는 기라

 

  왼쪽이 힘을 안 쓰면 깨지는 걸 와 모르나!

설거지하는 고무장갑
설거지하는 고무장갑

주방 필수품인 고무장갑의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는다. 1894년 수술실 간호사의 소독약 피부염을 목격한 미국 어느 외과 의사가 고무회사에 얇은 장갑을 주문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만 그렇지 보편화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을 비벼가며 설거지하시던 어머니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오른손잡이인 우리 부부는 이상하게도 먼저 새는 왼쪽 고무장갑한테 애먼 지청구를 해댄다. 손놀림은 오른쪽이 더 많은데 왜 왼쪽이 떨어지는지 의아하다. 멀쩡한 걸 버릴 때는 여간 아깝지 않았다. 지금은 한쪽씩도 유통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시선을 바꾸니 왼쪽도 참 가련하다. 제멋대로 돌려가며 문지르는 오른쪽 눈치를 살피며 그는 그저 묵묵히 따르기만 한다. 강도가 세면 센 만큼 속도가 빠르면 빠른 만큼 보조를 맞춘다. 조화가 어긋나 손에서 미끄러지면 그릇이 깨지기 일쑤다. 왼쪽도 사력을 다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말 많고 탈도 많은 을사년이 저문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권은 오늘도 치고받는다. 좌우와 여야가 늘 대척점에 있긴 하지만, 조화와 조율을 빚어냈으면 좋겠다. 힘을 합쳐 반질반질하게 닦아놓는 고무장갑처럼, 저들의 성과물에도 윤기가 흐르면 좋겠다. 올해야 다 갔으니 내년에는 제발 그리되길 소망해 본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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