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편을 246] 권갑하의 「달항아리」 3편
달항아리
―설백
권갑하
눈꽃 스민 자리
실금 잘게 머금은
은빛 고요를 안고
둥글게 나를 품은
속 깊은 어머니 마음
눈물로 반짝이네
달항아리
―혼빛
빈 듯
가득 찬 듯
거룩한 적막 같다
오래
사위어간
숨결마저 해묵은
빛바랜
어머니 무명
희끗희끗 비친다
달항아리
―부재
그대 남긴 빈자리
달 저문 그믐 같다
몇 해를 건너왔나
다신 뵐 수 없어도
어스름
달빛 차림으로
오실 듯한 어머니
―『마음꽃 달항아리』(도서출판 작가, 2025)

[해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
77편의 단시조를, 오직 달항아리만을 대상 사물로 두고 연작시를 썼으니, 『마음꽃 달항아리』다. 작품 가운데에는 가슴 떨리게 하는 연애시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조를 3편 예시한다. 시인은 작년에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달항아리 그림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2023년에는 서예 개인전도 열었다. 신의 사랑을 각별히 받았는지 詩ㆍ書ㆍ畵를 다 잘하는 그이가 나는 몹시 부럽다. 조선조 후기부터 빚어지기 시작한 백자인 달항아리는 은은하게 빛나는 흰색과 만월처럼 둥그스름한 곡선이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고서 입덧도 많이 했을 테고, 배가 점점 더 불러오면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만삭의 어머니 배는 달항아리 같지 않았을까. ‘설백’은 눈처럼 하얀색을 가리키는데 산달이 다 된 어머니의 배를 상상해보니 그 모양도 둥그레하지만 눈 온 날의 눈꽃처럼 하얬을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시면서, 손과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을 것이다. 세상의 자식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 지구상의 모든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어머니의 무명치마가 희끗희끗 빛이 바랠 때까지 부엌일, 밭일, 혹은 장사까지 하셨는데 자식은 대개 용돈 타령이나 하고 불만이 그리 많다. 빈 듯 가득 찬 듯 거룩한 적막 같은, 오래 사위어간 숨결 같은 달항아리, 어머니, 무명치마는 삼위일체다. 하느님이다. 거룩한 분인데 자식들은 그걸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머니는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그대 남긴 빈자리가 달 저문 그믐 같다. “어스름/ 달빛 차림으로/ 오실 듯한 어머니”라니 뒤늦게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애통해 하지만 다시 뵐 수 없는 어머니는 달항아리가 되어 은은히 빛나고 있을 뿐이다. 달항아리의 모양은 단순하고 색깔도 흰색 단색이다. 이른바 ‘꾸밈새’가 전혀 없다. 그런데 참으로 아름답다. 고요함의 미이며 편안함의 미이다. 달항아리 그림을 그리면서, 달항아리 연작시를 쓰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을 권갑하 시인의 손을 잡고 싶다.
[시인 권갑하]
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나래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조집 『단 하루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외등의 시간』『누이감자』『겨울발해』『오곡밥』 등을 냈다. 농민신문사 논설실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나래시조시인협회장, 농협대 겸임교수를 했었고 현재 강남문인협회장, 하늘재문학관장, 문경새재여름시인학교장, 청안문예창작대학원 교수를 하고 있다. 최근에 웹진 '문예마루'를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문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