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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천년의 어부바 - 유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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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천년의 어부바 - 유응물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당신이 돌아가시고 생전에 당신이 매만지시던 옥상의 장독대에서 허리가 굵은 해주항아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항아리를 비워낸 뒤에 어머니 당신의 체취를 맡듯 얼굴과 상체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만히 어머니, 하고 불러 보았다. 항아리 안에서 은은하고 웅숭깊은 울림이 무슨 소리의 광배光背처럼 나를 그윽하게 감싸는 듯했다... 

   
   그 해주항아리가 이제 주인을 바꿔 어머니의 이웃 장독대로 이사를 간다. 묘한 슬픔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어머니라는 영육靈肉의 해주항아리에 든 것들은 사람이든 이웃이든 하늘의 말씀이든 된장 고추장이나 간장이든 동티가 나고 그르칠 일이 없다. 비록 궁색한 기색이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 넓고 웅숭깊은 자애와 희생의 복원력이랄까 사랑의 근육이 있었다. 모나고 강퍅한 심보들을 만나면 그 습습한 너름새는 똑같이 모나고 강퍅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그윽이 당신의 등짝에 보이지 않는 눈물로 업어주었다. 거부하고 까탈을 부리고 할 마련도 없이 당신은 이미 '손이 큰 마음'으로 무명의 등을 내주고 있었다. 해주항아리의 내용물을 다 퍼주고 그 기명조차 막내아들에게 굴려서 이웃의 지인에게 바통 터치한다... 

   

    나는 무심코 거리나 공원이나 산길을 지나다가 왠지 눈에 띄는 나무를 만나면 무심코 가만히 끌어안는다. 나무와의 프리허그인 셈이다. 누가 보면 이상하거나 살짝 미친 것은 아닌가 여길 수도 있다. 어머니 당신 같은 나무가 눈에 띄면 저절로 그쪽으로 길을 벗어난다... 나무가 얼마나 그런 나의 그런 포옹을 허락했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나무를 깊고 그윽하게 끌어안으려 한다. 나무의 심장과 기운과 속종이 내 마음에 연결되고 내 심정도 그런 나무에 고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현세에 안 계시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가만히 끌어안아 드리는 것이고 또 내 그리움의 등짝에 어부바해 드리고픈 내 방식대로의 어부바 형식 같은 것이다... 

 

    내 등짝 너머로 제주 비취빛 바다도 보고 멀리 마라도 섬도 내다보세요. 어부바 엄마.

 

 - '내 인생의 어부바' 중에서

해주항아리 [사진 : 국립민속박물관 누리집 ] 

[수필 읽기]
 

  둥근 항아리를 닮은 어머니의 마음씨를 그리워하며 작가는 길을 가다가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를 보면 가만히 안   아준다. 어머니를 닮은 나무에 그의 마음을 담아 프리허그 하는 것이다. 


  어머니 생전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을 아쉬워하며 그는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달래본다.

  
  우리는 그때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돌아보고 후회도 하게 된다. 

    

  산길이나 공원의 굵은 나무 기둥을 보거나 뿌리가 다 드러나고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나무를 보면 나는 울퉁불   퉁한 기둥 껍질을  어루만지며 나무에게 말한다. "너도 힘들었겠구나, 수고 많았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꽃봉오리를 맺었구나, 싹을 틔웠네, 고마워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 
 

  자연은 인간보다 숭고한 존재이다

 

 [김영희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기자]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수필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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