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문학일반

2026년 구상솟대문학상 박성진·이원형어워드 김원서 선정

류우강 기자
입력
한국장애인예술인협회 - 신진 작가 발굴로 가치를 드러내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대표 석창우)가 2026년 제36회 구상솟대문학상과 제9회 이원형어워드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번 수상자는 시인 박성진과 화가 김원서로, 각각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장애를 넘어선 창작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제36회 구상솟대문학상 – 박성진 시인


구상솟대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박성진 시인의 시 포도넝쿨이 덮은 집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김재홍(가톨릭대학교), 맹문재(안양대학교), 이승하(중앙대학교) 모두 최고 점수를 주며 31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박성진 시인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인해 대학 시절 완전히 실명했으나, 이후 점자와 안마 기술을 익혀 안마사로 활동하다가 2018년 장애인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현재 광산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근무 중이다.
 

심사위원장 맹문재 교수는 그의 작품을 “서정성과 묘사력을 작품의 구성으로 통합해 완성도가 높으며,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주제 의식이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박 시인은 “구상 선생님의 이름이 새겨진 상을 무겁게 여기며 세계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시인이 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상금은 500만 원이며, 도서출판 연인M&B 후원으로 개인 시집 출판 기회도 제공된다.

 

제9회 이원형어워드 – 김원서 화가


서양화가 김원서 작가는 생후 7개월에 소아마비로 왼쪽 하지가 불편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을 이어왔다. 상업 그림을 그리던 그는 정년퇴직 후 다시 붓을 잡아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6년 제9회 이원형어워드 수상작 - 김원서 작가 ‘비상’
2026년 제9회 이원형어워드 수상작 - 김원서 작가 ‘비상’

수상작 비상은 “주제의 일관성과 화면 구성의 안정성이 돋보이며, 자연 이미지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삶의 태도를 확장한다. 꿈과 희망을 향한 상승의 의지가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은 김미경(홍익대학교), 박현희(성산효대학원대학교), 석창우 화가가 참여했다.
 

김원서 작가는 “부족한 제가 받아도 되는지 걱정이 앞서지만,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쁨과 당혹감이 함께한다”고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상금은 고(故) 이원형 작가 유족의 후원으로 200만 원이 수여된다.

 

이번 수상은 장애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이 단순한 극복의 서사를 넘어, 한국 문학과 미술의 다양성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성진의 시는 인간 내면의 가치와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했고, 김원서의 회화는 자연과 삶을 연결하며 희망을 그려냈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는 앞으로도 신선한 작가 발굴과 지원을 통해 장애 예술인의 창작 가치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 2026년 제36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

포도넝쿨이 덮은 집

박성진

포도넝쿨이 집을 덮고 있다
잿빛 시멘트 바닥인 마당 한 켠에서 뻗어 나와
새하얀 담장을 휘감아 덮고 있다
구두 한 켤레 놓여 있을 섬들이 온데간데없다
녹슬어버린 자물쇠가 채워져 있을 현관문도
붉은 커튼 드리워져 있을 창문도 보이지 않는다
넝쿨손은 집 한 채를 통째로 밑거름 삼아
양철 지붕마저 덮어버렸다 시퍼렇게 덮고서는
아직도 뭔가 부족하다는 듯 뻗어나가는
저승사자 같은 것들
집안 곳곳에 배인 추억들마저 삼켜버릴 작정인가

어디서부터 뻗어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암세포줄기 탓에
엠알아이에 찍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흑빛이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뇌종양들
그녀의 기억들을 썩은 두엄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된 좌뇌에 이어
새하얗던 중뇌마저 까맣게 자취를 감춰 버렸다
몇 번인가 툭
포도송이 그 까만 알들 떼어내듯 종양들을 잘라보지만
소용없다 끊임없이 자라는 넝쿨손들
힘겹게 남아있는 우뇌마저 덮어버릴 기세로 뻗어 나오는 것이다

포도넝쿨이 덮어버린 집이라니!
저 넝쿨손들 다 걷어내면
굳게 잠겼던 자물쇠 스르르 풀릴 것만 같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히 썩어가는
환한 등불이 되고 싶은 밤
자꾸만 병실을 기웃거리던 머리털자리 별 하나
반들반들한 머리 위로 금세라도 떨어질 듯 창가에 바짝 붙어
새하야니 빛나고 있다

*시골에는 폐허가 되어 잡초가 수북한 빈집이 많은데 시인은 그 모습에 포도넝쿨을 얹었다.
그리고 포도넝쿨을 뇌 속에서 번져나가는 뇌종양에 비유한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암으로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으며 지금도 병실에서 암 투병을 하시는 분들에게 환한 빛이 되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 시이다.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