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세상보기 : 시 ] 분리 수거장 / 최연숙
분리 수거장
최연숙
바람이 송전탑 9부 능선을 넘나들 때
나는 막살고 싶어졌다.
관계에서는 상대를 지칭하지 않는다.
대충 챙겨 먹은 저녁 탓에
밤하늘 뭇별들이 허기처럼 쏟아졌다.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짜여진 하루치의 노고
낱알처럼 흩어져 가던 마음을 차근차근
용도에 맞게 분리를 한다.
구석진 곳에서 다 써버린 건전지의
최후변론이 흘러나오고
내몰렸던 바람이 쌓아 놓은 종이 박스
사이사이로 숨어든다.
어둠을 등지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따스한 목례를 보낸다.

최연숙 시인
『제3의문학』 신인상 수상
천안문인협회 회원
천안여류시동인회
사화집 등에 시 발표
시집 『그렇다, 아니다』, 제3의문학, 2025.

최연숙의 시 「분리 수거장」의 시는 시제에서 알 수 있듯이 쓸모를 다한 사물들의 공간을 매개로 일상의 피로와 내면을 추스르는 치유의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버려진 것들에는 그 어떤 시선도, 관심도 두지 않는 현실 앞에 화자는 자신을 투영시켜 연민의 시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첫 행의 “송전탑 9부 능선”의 위태로움과 “막살고 싶어졌다.”에서 한계에 다다른 정신적 피로감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관계에서는 상대를 지칭하지 않는다”의 시구는 삭막한 현대 사회의 익명성과 관계의 건조함을 꼬집은 멋진 시구이다.
예를 들어 집 주변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분리 수거함’은 '쓸모없음'을 버림과 동시에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으로 재생산되는 역설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낱알처럼 흩어져 가던 마음" 처럼, 용도에 맞게 분리하면서 버려져서 흐트러진 무질서한 감정의 파편들을 가다듬어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화자의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시구를 보자, "다 써버린 건전지의 최후변론"이나 "“종이 박스 사이로 숨어든 내몰린 바람"은 쓰임을 다하고 수거함에 버려진 사물과 같은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따스한 목례‘는 아무리 험악하고 냉정한 세상일망정 지치고 힘든 존재들에게 넌지시 보내는 따스한 온기이고 예의이다. 시인의 시심에서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