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4] 박상봉의 "짐 자전거"
짐 자전거
박상봉
연대보증 섰다가 명퇴금 다 날리고
남은 개똥받이 한 뙈기 팔아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 시작한 아버지
그마저 실패하고 마지막 밑천으로
낡은 짐 자전거 끌고 밤늦도록
이 동네 저 동네 생선 팔러 다녔어
새벽부터 싣고 다닌 마른 명태 꾸러미
잠깐 오줌 누고 온 사이 누군가 몽땅 들고 달아나버렸다는데
아버지는 소리 내어 맘껏 울지도 못하고 남몰래 흔들리며
등 굽은 어깨 너머 노을처럼 저물었다
바람이 숭숭 들락거리는 단칸방에서
혼자 식은밥 떠먹다가
덜거덕 덜거덕 텅 빈 짐 자전거
문간에 들어서는 소리 들리는 것 같아
달빛 뚝뚝 떨어져 내리는 골목길 내다보면
시린 발 동동거리는 퀭한 북어 눈이 되었다
—『불 꺼진 너의 단어 곁에서』(모악, 몰개시선 006, 2025)

[해설]
이 땅의 한 불쌍한 아버지
그리 길지 않은 시 한 편 속에 어느 아버지의 기구한 생애가 펼쳐진다. 예전에는 보증을 잘못 섰다가 재산을 몽땅 날린 아버지들이 꽤 많았다. 그 때문에 자식들 교육을 중단시킨 아버지도 있었다. 시적 화자의 아버지는 명퇴금을 다 날리고 남은 밭 한 뙈기를 팔아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 속의 아버지는 채소 장수마저 말아먹고 낡은 짐 자전거 뒤에 생선을 싣고 다니면서 팔았다. 그런데 세상에! 새벽부터 싣고 다닌 마른 명태 꾸러미를 잠깐 오줌 누고 온 사이에 어떤 도둑이 몽땅 들고 달아났으니 죽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 식구들 앞에서 엉엉 울 수도 없었다. 한밤중에 소리 죽여 한숨 내쉬며 눈물을 닦았을 것이다. “등 굽은 어깨 너머 노을처럼 저물었다”는 명구다. 아버지의 후반부 생이 이 한 줄에 압축되어 있다.
시의 후반부는 화자의 이야기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단칸방에서 혼자 식은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텅 빈 짐 자전거를 끌고 문간에 들어서는 소리를 환청인 양 듣는다. 골목길을 내다보면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시린 발 동동거리는 퀭한 북어 눈”의 주인공은 화자 자신이다.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식인 이 시의 화자도 인생이 뭐 그리 잘 풀린 사람이 아니다. 부자(父子)가 다 애처롭다. 요즘에 큰 짐 자전거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짐칸에 큰 나무판자를 올려놓아서 몇 박스의 짐을 실을 수 있었다.
[박상봉 시인]
1958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으나 출신지는 경북 청도다. 1981년 《시문학》 추천을 받았으며, 박기영ㆍ안도현ㆍ장정일 등과 동인지 『국시』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부터 5년간 북카페 겸 문화공간인 ‘시인다방’을 경영하면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했다. ‘산아래서 詩누리기’를 비롯한 ‘시인과 독자의 만남’을 200회 이상 기획ㆍ진행했고, 서울ㆍ대구ㆍ구미 등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문학활동과 문화운동을 펼쳐왔다. 시집으로 『카페 물땡땡』『불탄 나무의 속삭임』『물속에 두고 온 귀』를 펴냈으며, 『물속에 두고 온 귀』로 제34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