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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4] 누나가 나오는 윤동주의 동시 3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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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윤동주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에

눈이 아니 온다기에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사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 넷이서

껍질째로 송치까지

다―나눠먹었소.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더스토리, 2024)  

이승하,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서연비람, 2025) 

  [해설]

 

   멀리 간 누나, 힘든 누나, 배고픈 누나

 

  이 동시 속의 남동생은 죽은 누나 혹은 오래 헤어져 있는 누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제주도처럼 따뜻한 곳만 눈이 잘 안 내리는데, 누나가 가신 나라도 그렇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태국인가 말레이시아인가. 눈 내리던 날 누나와 함께 놀았던 따뜻한 기억이 화자에게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이승의 눈을 저세상에 있는 누이에게 보내고 싶은 것이다. 누나와 오래 헤어져 있는 남동생의 슬픔을 다룬 이런 동시가 단순히 남매간의 이별을 다룬 것일까? 아무래도 취업 사기를 당해 일본의 군부대에 가서 끔찍한 고통을 당한 이 땅의 누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동시는 비록 동시이기는 하지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지닌 작품이다. 일터는 밭일 수도 있고 공장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거나 누나는 아침에 일하러 나가 지칠 대로 지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돌아온다. 해 뜰 무렵에 나가서 기진맥진해서 귀가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공장에 나가는 누나를 그린 듯하다. 나 자신의 다섯 고모님은 몽땅 눈만 뜨면 학교에 가지 않고 군수공장에 가서 일했다.

 

  오랜만에 사과 맛을 보게 되었다. 사과 한 개를 네 식구가 나눠 먹는데 껍질을 벗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송치(속고갱이)까지 다 먹었다는 것이다. 사과를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이다. 동시의 내용은 너무나 귀한 과일이라 한 조각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것이 전부다. 당시의 궁핍상을 아주 상징적으로 그린 동시로 볼 수 있다.

 

  윤동주의 동시에는 이렇듯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누나의 고통과 이 집안의 궁핍상을 그리고 있어서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당시 아이들이 겪었을 슬픔을 접하니 왠지 북한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윤동주는 동시를 쓰면서도 아이들이 겪었을 허기와 궁핍, 억압과 이별에 애잔한 마음으로 노래하였다.

 

―이승하,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서연비람, 2025)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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